지하경제와 조세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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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경련 부설의 한국경제연구원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아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은 이런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드물었던 점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충분히 흥미롭다.
우선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우리의 지하경제 규모가 GNP의 20%내지 30%에 달한다는 결론부분이다. 이런 유의 연구가 완벽한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점을 인정하더라도 지하경제가 GNP의 20%를 넘는다는 추산은 놀랄만하다.
더구나 이런 추산이 통상 그렇듯이 매우 보수적으로 행해졌을 개요성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규모는 우리의 조세 부담율이 GNP의 20% 수준임을 고려할때 실로 방대한 규모다. 만일 이 탈법적 지하경제가 모두 양성화된다면 현행의 국민조세 부담율은 절반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도 가능하다.
결국 지하경제의 문제는 그것의 불법성이나 비합법성의 문제라기 보다 우리의 경우는 형평의 문제, 사회적 정의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같은 불공평과 사회정의의 배치를 조장하는 지하경제가 많은 경우 제도의 미비나 법령의 불완전, 행정절차나 관행에 의해 유발되거나 촉진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지하경제의 한 전형이라 할 탈세문제만 해도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에게는 이중의 부담과 불공평을 지우는 결과가 된다. 세제발전심의회가 추산한 바로는. 84년의 과세 포착율을 근거로 할때 총탈세규모는 2조6천5백억원으로 총 조세의 21.4%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더구나 이같은 탈세가 근로자 소득보다는 사업소득과 재산소득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81년에는 봉급생활자의 과세 포착률이 70.4%인데 비해 사업소득은 38.7%, 재산소득은 고작 29.7%만이 과세대상으로 포착되었다.
물론 그 이후의 징세 행정강화로 지금은 소득별 과세 포착률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근로소득의 상대적 성실성에 비해 재산소득이 과보호되는 조세유형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재언의 여지없이 조세의 불공평을 반증하는 첫번째 자료가 될 것이다.
때문에 이같은 제도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조세개혁이야말로 지하경제의 원천을 봉쇄하고 사회적 형평을 높이는 지름길임을 깊이 인식해야할 것이다. 은폐되고 보호되는 소득부분을 과감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거래에서 실명제가 완벽하게 정착돼야하며, 각종 명목으로 과보호되어온 재산소득은 근로소득과의 균형을 생각해서라도 정상 과세돼야 한다.
또 하나의 주요 지하경제 부문인 사채에서는 최근 수년간 금융제도발전과 함께 서서히 변모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부문도 금융산업발전의 차원에서 제도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외화도피나 부정부패의 문제도 탈법의 단속못지않게 그 원천을 봉쇄하는 다양한 행정기법과 제도의 보완이 있어야할 것이다.
지하경제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법률·조세·행정·제도의 불완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새삼 지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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