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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샤이니한 얼굴을 내려놓고, 밑바닥에서 낯선 최민호를 꺼내다 ‘두 남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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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최민호(25)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두 남자’(11월 30일 개봉, 이성태 감독)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반쯤 장난으로, 기분 좋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언론 시사 이후 ‘배우 최민호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나서야 “진짜 인정받은 것 같아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두 남자’ 전까지 최민호의 연기는 어느 정도 보이 그룹 ‘샤이니’ 이미지에 빚지고 있었다. TV 드라마 ‘처음이라서’(2015, Onstyle)의 윤태오는 삶에 그늘도 없고 마음에 구김도 없는 청년이었고, 첫 영화 ‘계춘할망’(5월 19일 개봉, 창감독)의 한이는 깨끗하게 빨아 말린 교복 셔츠만큼 단정하고 반듯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두 남자’에는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빛나던 소년은 없다. 가출한 10대가 된 그는 길에서 잠들고 담배를 피우며 쉽게 멍들거나 자주 넘어진다. 이 영화를 통해 최민호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방법도 배웠고, “나와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방법도 배웠다. 그의 연기에 대해서라면, 지금까지는 ‘두 남자’가 최고 기록이다.

스타일리스트 최진영 헤어 임정호(아우라뷰티) 메이크업 김주희 의상 협찬 코모도, 페르드르 알렌느, 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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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최민호가 샤이니 멤버여서만은 아니다. 2008년 데뷔했으니 벌써 연예계 생활 9년 차. 그는 노련하게 카메라 앞에 설 줄 알고, 누구에게나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 주는 연예인이다. 그렇다면 배우로서는 어떨까. 최민호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가출 청소년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졌을 때 주변에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지금껏 이미지 변신을 향한 배우들의 열의가 과욕이 되어 버린 경우를 숱하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과연 최민호의 변신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계춘할망’에 이어 ‘궁합’(개봉 예정, 홍창표 감독)까지, 역할 크기에 욕심내지 않고 제 몫을 해낸 그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최민호는 왜 ‘두 남자’를 선택했을까. “시나리오를 읽는데 숨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극 중 진일이 된 것처럼, 형석(마동석)과 진일이 마주칠 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하더라고요. 글로 읽기만 해도 이런 느낌이 드는데, 영화로 옮기면 어떨까. 식상한 표현일지 몰라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나리오였고, 직접 진일이 되어 보고 싶었어요.”

‘두 남자’ 최민호

하지만 ‘변신’에 가까운 도전이 쉬웠을 리 없다. 우선 ‘회사(SM엔터테인먼트)’라는 산부터 넘어야 했다. “(센 영화다 보니) 솔직히 출연하기 어려울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지만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까. 그래도 배우로서 의지를 보여 주고 싶더라고요. 계속 ‘하고 싶다, 꼭 하고 싶다’ 말하고 다녔어요. 사실 그런 와중에도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사장님께서 ‘좋아, 한번 해 봐!’ 하시며, ‘잘 해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가 났어요.” 다음 산은 바로 최민호 자신이었다. 진일은 단순한 가출 청소년 캐릭터가 아니다. 게다가 ‘두 남자’는 그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앞모습으로 끝난다. 어쩌면 진일은 형석이 지나왔을지도 모르는 과거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진일’이란 한 남자에게로 모인다. 어린 나이에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가출한 진일. 극 중에서 전부 설명되지 않더라도, 그는 온갖 일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따뜻한 가정에서 밝게 자란” 최민호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이었다.

극 중 진일이 되기 위해 최민호는 두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첫 번째는 담배를 배운 것이다. “영화 촬영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이었어요.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흡연자들의 눈에 가짜처럼 보이면 큰일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담배를 미친 듯이 피웠죠. 사나흘은 헛구역질이 나와 힘들었지만, 최대한 캐릭터 파악에만 집중했어요.” 두 번째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고민하는 일이었다. “저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항상 원을 그려요. ‘최민호’라는 원과 ‘전진일’이라는 원 사이의 교집합을 찾는 거죠. 지금까지는 최민호라는 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물들을 연기해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가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이 중요했고요. 그런데 진일은 실제 저와 겹치는 부분이 아주 적은 캐릭터예요. 그는 가출해 도둑질도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모범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해요. ‘팸(가출 청소년들의 공동체)’에서 가장 같은 역할을 하거든요. 그런 진일의 모습이 제가 가진 책임감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렇게 최민호가 온전히 진일이 되어 만난 사람은, 형석의 얼굴로 그 앞에 나타난 배우 마동석이다. 최민호는 마동석을 ‘마 형님’이라 부른다. “저보다 마 형님이 ‘두 남자’에 먼저 캐스팅됐어요. 제가 출연 여부를 두고 고민할 때, ‘이 영화는 꼭 너와 하고 싶어. 결과가 어떻든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해 주셔서 큰 힘이 됐죠.”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마동석과 합을 맞추자 ‘누가 봐도 내가 밀린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마음속에서 승부욕이 꿈틀거렸다. “물론 (마 형님을) 이기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두 캐릭터가 맞붙을 때 ‘비빈다’ 정도의 느낌은 나야 할 것 같더라고요. 촬영 초반 저의 연기를 꼼꼼하게 돌아봤죠. 수천 번 연습한 대본을 또 들여다보고, 다른 연기를 자꾸 시도해 보고. 그러면서 점차 호흡을 맞췄던 것 같아요.”

‘두 남자’에서 진일은 형석에게 많이 맞는다. “액션 연기는 배우들이 움직임의 합을 맞추거든요. 그런데 이성태 감독님은 극사실주의 액션을 원하셨어요. 그래서 마 형님에게 ‘세게 때리고 세게 밟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극 중 형석이 진일의 배를 때리는 ‘편의점 장면’ 촬영 날이었어요. 첫 번째 테이크 촬영 후 무술감독님(김병오·전종석)이 ‘안 아파 보인다. 원래 배를 맞으면 숨 쉬기도 어렵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엄청 아픈데! 두 번째 테이크에서는 마 형님 주먹이 제 배에 심어지는(!) 것 같았어요. 맞는 순간 숨 쉬기가 힘들더라고요. 다음 대사도 못하겠고, 그 와중에 멱살도 잡히고, ‘이렇게 아픈데 왜 또 때리지?’ 싶고(웃음).” 그 덕분에 “맞는 장면이 극 중에서 유독 사실적으로 보였다”고 하자, 최민호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저는 다쳐도 상관없어요. 그저 ‘영화가 잘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요.” 자신은 망가지고 무너져도 괜찮으니 더 좋은 영화로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최민호의 ‘두 남자’를 있게 했다.

“‘두 남자’ 촬영이 끝난 후에도 한 달간 담배를 끊지 못해 고생했다”는 최민호. 그는 만우절인 지난 4월 1일, 거짓말처럼 담배를 끊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이거 하나 끊지 못하면서, 앞으로 무슨 연기를 하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최민호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오직 연기뿐. 휴식 기간에는 연극도 자주 보러 간다. “눈앞에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 연기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다. ‘아이돌 최민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두 남자’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줬으니, 이제 “‘배우 최민호’의 모습을 더 많은 작품에서 더 많이 보여 주는 것”이 목표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 최민호에게 이런 이미지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초심을 지켜 나가야죠.” 최민호의 다부진 약속이다.

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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