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진원지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의 ‘일 로타마토레(싸움꾼)’로 불리는 마테오 렌치(41) 총리는 배수의 진을 쳤다. 개헌안을 놓고 다음달 4일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 “과감히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렌치 총리가 투표에서 패배하면 이탈리아 은행 8곳의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며 이탈리아 발(發) 유로존 위기 가능성을 걱정했다.
상원 힘빼기 개헌 나선 렌치 총리
“투표 부결되면 사임” 배수진 쳐
자본확충 못한 은행 줄도산 우려
렌치의 싸움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14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총리직에 올랐다. 장기집권했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취임 당시 39세) 이후 두 번째로 등장한 젊은 총리였다. 그는 정치·경제개혁과 함께 개헌카드를 내걸었다. 이탈리아의 정치체계를 행정부 중심으로 바꿔 개혁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상원 의석수를 줄이고 총선에서 40% 이상 득표한 정당에 과반수 의석을 주는 것이 골자였다. 유럽연합(EU)과 이민자를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오성운동’은 렌치 반대편에 섰다.
렌치 총리의 실패가 은행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뒤에는 고질적인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채권(약3600억 유로) 문제가 놓여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 대출 가운데 17%가 부실채권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 은행 부실채권 비율(5%)보다 높다.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 3대 은행 중 하나인 몬테 데이 파스키 데 시에나(BMPS)와 같은 은행이 파산할 경우 수백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혈세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해왔다.
FT는 렌치 총리가 개헌에 실패하게 되면 BMPS를 비롯한 8개 은행이 증자에 실패하면서 줄도산하게 되며, 극우정당인 오성운동 집권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은 이탈렉시트(Italexit·이탈리아의 EU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8일 발표된 4개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 20%대에 개헌 찬성(34~47%)이 반대(41~42%)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렌조 코도뇨 전 이탈리아 재무부 수석연구원은 “국민투표 직후 발표될 예정인 이탈리아 은행들의 자본확충은 예상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