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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인 더 룸 #1

중앙일보

입력

육체와 정신의 무게는 같을까. 알려줄 수 있어요?

눈을 감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나는 돼지다.’

웃음이 터져 나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키득거렸다.

'그래, 나는 돼지야. ’

슬립을 걷어 올린 뒤 팬티에 천천히 손을 넣어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어떤 자세가 가장 좋을까? 벌어진 다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느낌이 좋은 체위를 정확하게 찾으려 몸을 움직였다. 다리 사이로 가져간 손가락을 조금씩 세게 움직이자, 무성영화처럼 은밀하게 들썩거리는 이불이 내려다보인다. 팬티 속은 세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서 시큼한 향기와 함께 하염없이 비틀어지고 있다.

'여기구나, 찾았다.’

배게 위로 삐쭉 내민 얼굴이 구겨지고 조금씩 목 안에서 상처 입는 듯 비음이 새어 나왔다. 손가락이 분주해도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불길이 사그라드니까, 이제부터 온갖 야한 상상을 해야 해.

푹신한 은빛 양털을, 폭신 거리는 의자에 걸터앉은 농염한 표정의 여자를, 그녀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처박은 건장한 사내를, 오럴섹스의 유희에 빠진 남녀를.
여자는 쾌락에 물려 허리를 들썩이다 교성을 지르며 활짝 핀 백합처럼 사지가 쫙 벌어지지. '아아, 저 놀림이 좋은 혀를 갖고 싶어. 반질거리는 남자의 머리를 내 다리 사이에 처박고 싶어.’ 제어가 안 되는 부드러운 혀에 닿고 싶다는 몸부림, 손가락이 뜨겁다. 미끈거리는 애액을 질구에서 쓸어 올려 정신없이 문질러야지. 너무 세게 하면 안 돼, 클리토리스의 기쁨에 번뜩이는 날이 서면 검은 뱀의 눈알을 만지는 것처럼 두려움과 쾌감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 '조금 더 하고 싶어,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조금 더 지속하고 싶어, 하지만 끝까지 가고 싶어, 끝내고 싶지 않아, 아, 몸이 더 벌어지고 있어, 아무도 브레이크를 밟아선 안 돼, 정지선을 넘어줘, 그대로 질주하다 하늘로 날아오를 거야, 그대로 계속 가야 해, 착륙하지 마, 이대로 끝까지 가고 싶어! 하아, 아 아…’ 손가락이 극도로 예민해진 성감대를 몇 번 더 자극하자 골반과 엉덩이가 정신없이 들썩거렸다. 혈관에 쾌감이 실려 숨 막히게 온몸으로 퍼진다. 질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벌어졌다 작아졌다 움쭉거리기를 반복하면 몸짓은 방향을 잃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마지막 여운을 담아, 끝까지 남은 욕정을 문지른다. '끝까지. 끝까지….'

한참을 죽은 것처럼 힘없이 누워있었다. 정신을 차려보았더니 다시 적막한 밤이 되었다. 어둠을 깨고 멀리서 사나운 개가 짖는다. ‘멍멍!’ 개와 나 사이의 기시감이 눈앞에 그려진다. 애액이 묻은 손을 이불에서 꺼내어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체액에 퉁퉁 부어 하얘진 손가락이, 정사 후 피곤한 듯 인상 쓴 남자의 얼굴 같았다. 밉살스러웠다. 코끝에 가져와 냄새를 맡자, 코코넛과 싱싱한 레몬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가 따뜻한 입김처럼 휘발한다. 쾌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손에 묻은 액체뿐이구나. 음탕하던 상상과 감각은 모두 잠들었다.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와 무슨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애액이 묻은 손을 꼭 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 떼겠지.

몸을 조금 뒤척이자 손끝이 닿았던 곳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열어 재낀 창문에서 가을 냄새가 확 밀려들어 왔다. 이마에 땀과 머리칼을 청명한 밤이 부드럽게 매만진다. 앞머리가 바람에 날려 눈을 덮었다. 둔탁한 겨울이 곧 올 테지.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엔 올블랙 겨울 코트를 멋스럽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하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해맑은 달 한 덩어리, 스산하다.

갈대를 흔드는 것,
갈대가 흔들리는 것.

그 시절 나는 소녀, 작은 여자였다. 소녀.
피부에서부터 나는 세상과 격리된다. 그리고 피부로 인해 나는 완전해진다. 작은 여자이던 시절, 여린 살갗은 작은 가시에도 긁혀 피가 쉬이 났다. 세상의 욕망이 자꾸만 성장에 닿았다.
지름길은 산에 숨어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 산에 똬리를 튼 오솔길을 넘어야 한다. 우거진 숲은 나뭇잎으로 은밀했고 한동네에 살던 단짝 미영이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남자 고추가 여기에 들어가는 거 알아?”

"정말?"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당황했다. 나는 우연히 샤워를 끝낸 아버지의 고추를 본 적이 있었다.

"거짓말! 그렇게 큰 게 어떻게 들어가냐?"

욕실 문틈으로 살짝 보였던 아버지의 고추, 손가락을 잠지 사이에 살짝 넣어봤다는 미영이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날 집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거울로 이불 속에서 팬티 속을 비춰보았다. 내 것의 모양이나 빛깔 따위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손을 가져가 살짝 만져보았지만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만진 손을 가져와 냄새를 맡자 지린내가 났다.

‘그게 여기에 들어간다고? 거짓말이야, 거짓말쟁이 계집애. 더럽게.’

아무리 찾아도 들어가는 곳을 알 수 없었다. 뭔가가 들어간다면 아플 것 같았다. 걱정이 됐다. 무척이나. 그런 말을 했던 미영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산에서부터 집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던 시절, 미영이와는 가을이 지나면서 사이가 많이 벌어졌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미영이의 집 앞을 지나치지 않으려 길을 빙 돌아 오가곤 했다. 혼자서도 재미가 있는 일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은 채 겨울 마실을 시작했고 산 밑에서 가져간 연탄재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꺾어 팔을 만들었다. 삼십 분쯤 지나자 멀리서 산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저씨로 보이는 남자 셋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꼬마야, 몇 살이니? 이 동네에서 살아?”

“왜 그러시는데요?'

동네에서 본 사람들이 아니었다. 처음 본 낯선 사람들. 조금 경계심이 생겼다. 왠지 모르게 온몸이 뻣뻣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더니 파란색 추리닝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내게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궁금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귀엽게 생겼네.”

“애기야, 여기 뭐 있는지 아니? 궁금하지 않아?"

갑자기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성기 부분을 가리켰다. 고추가 그곳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경계심과 부끄러움이 내 입을 막았다. 남자는 히쭉거리다 손을 뻗으며 내 손을 자신의 츄리닝 속으로 넣어보라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정색을 하고 남자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재밌다는 듯 츄리닝 남자는 한마디 더 보탰다.

"그런데 위험할 수도 있어. 말을 안 들으면 호랑이처럼 변할 수 있거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그가 내 손을 끌어당겼다. 눈장난을 실컷 했던 내 손은 무척 차가웠고 빨갛게 퉁퉁 부어있었다. 손을 끌어 바지 사이로 넣으려 하자, 뱀이 든 상자에 손을 넣는 것처럼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야 새꺄. 너무 어린애 아니냐. 그만하자.”

무리 중 검은색 가죽 잠바를 입은 남자가 시시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츄리닝의 남자는 그의 눈치를 보더니 실망한 듯한 표정을 하며 행동을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렸고 가죽 잠바는 나에게 짜증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꼬마야. 너 내려가서 사람들한테 아저씨 만났던 얘기하면, 아저씨가 호랑이로 혼내줄 것 같아? 칭찬해줄 것 같아?”

나는 숨을 두 번 크게 숨을 쉬고 감정을 억눌렀지만 울음을 터트렸고, 가죽 잠바는 귀찮다는 듯 빨리 가라며 손짓을 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김치찌개와 김,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가 차려진 밥상을 보고 몇 술을 뜨다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거실에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소파에 앉아 신문에만 온통 집중하고 계셨다. 너무 멀리 계셨다. 그날 밤은 길었고, 유난히도 뒤척였다. 한동안 티 나지 않게 말수가 줄었다. 산에도 그날 이후로 가지 않았다. 대신 미영이의 집 앞을 서성였다.

얼마 후에는 버스 의자에 앉은 나를 멀리서 힐끗 바라보던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가 좌석 앞으로 다가와 몸을 바짝 붙인 채 지퍼를 내렸고, 하굣길 해가 진 골목에서 사람이 지나칠 때를 기다리던 남자는 바지를 내리고 풀린 눈으로 음흉하게 물건을 흔들었다. 꺄악! 하고 놀라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개새끼! 개새끼! 라며 속으로 몇백 번 되뇌었다.

'고추가 그렇게 자랑스럽니. 너희들 고추는 호랑이로 변하니? 왜 그렇게 꺼내놓고 싶어서 안달이야?’

사춘기의 성징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길거리에 벌거벗은 여인들의 포스터를 마주칠 때는 눈을 흘기거나, 사람들이 없을 때는 손톱으로 눈을 파고 도망쳐버렸다.

무슨 소리야?

운동장을 가득 채운 함성이 울렸던 운동회 날, 장거리 선수로 출전하려던 같은 반 친구의 다리가 접질렸다. 대기 선수를 선출하지 못한 우리 반 아이들은 얼떨결에 스탠드에 앉아 가위바위보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가위만 냈던 내가 반 대표를 대신해 출전하게 됐다. 기를 쓰고 달렸지만, 등수는 반 대표 10명 중 꼴찌, 예상했던 일이라 아무도 야유하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에 기운이 없어 흐물거렸고 집으로 돌아온 내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개그맨들이 바보 같은 표정으로 억지로 웃기려는 걸 잠시 보다가 전원을 꺼버렸다. 대충 씻고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잠을 청했다.

컴컴했다. 꿈인가? 어두운 골목을 지나자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꾸웩 꾸웩 꿱 꿱, 꾸웩 꾸웩 꿱 꿱, 돼지가 노래를 한다. 울타리 안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돼지가 꾸웩 꾸웩 꿱 꿱, 꾸웩 꾸웩 꿱 꿱 가득 찬 돼지가 울타리를 넘네. 하나, 둘, 셋 꼬리를 물고 울타리를 넘고 또 넘네 루비색 치마를 입은 돼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돼지, 돼지가 노래를 하네. 돼지야 돼지야 어디를 가니. 귀부인 돼지가 에나멜 루비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신사 돼지가 하얀색 캠퍼스 운동화를 신고 하늘로 점프하네! 꼿꼿하게 걷는다, 돼지가 꾸웩 꾸웩 꿱 꿱, 꾸웩 꾸웩 꿱 꿱 노래를 하다 치마를 들썩들썩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돼지야, 돼지가 하얀 뱃살을 입고 회오리 춤을 추다가 내 주변에 동그란 원을 그리네 돼지가 이리 오네 돼지야 냄새나는 돼지야 저리로 꺼져버려 냄새나는 돼지가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춤을 추는구나 돼지야 살덩이가 출렁출렁 멍청이들! 다가오지 마 똥 묻은 손으로 내 몸을 만지지마 저리가 멍청이들! 돼지가 돼지가 노래를 하네 아악! 돼지가 몰려와 내 몸을 만져 몸이 움직이지 않아, 도망갈 테야! 돼지들이 내 몸을 올라타네 움직이고 싶어! 움직이고 싶어!

시야가 빙빙 돌았다. 귓속에서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이내 들리지 않았다. 꿈.

이였다.

적막한 어둠 속. 순간 이동을 했다가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이마가 서늘했고 땀이 조금 맺혀있었다.

손과 발끝을 움직여보았다. 간신히 감각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 사이 깊은 곳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묘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다리를 오므리니 기분이 조금 깊어졌다 얕아졌다 한다. 무슨 일이지? 기분이 이상해. 아아… 다시 돼지 무리의 노랫소리가 귓속에 울려 퍼졌다. 더러운 돼지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했나? 돼지가 더러운 손으로 내 몸을 망가트린 걸까? 가랑이 사이에 돼지의 손이 닿았던 것 같아. 아니, 돼지가 되었나 봐. 이 징그러운 느낌은 뭐지?

더러운 돼지가 다리 사이에 처박혀버렸나 봐.


작가 소개  
조금 어린 나이의 결혼 그리고 빠른 나이의 이혼, 통신회사, 콜센터, 어학원 운영 중 경영악화로 빈털터리가 됨. 2년간 낙오자라는 패배감으로 자폐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무작정 세계 여행을 시작. 1년 정도 해외 여행 중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성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조망하는 시와 수필을 SNS에 연재 중이다.

<아스팔트에 핀 꽃> 동인 시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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