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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한국경제에 닥친 세 가지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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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설마 했던 일이 또 벌어졌다.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370명의 경제학자들이 공개서한을 통해 트럼프 공약의 허구성을 지적했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어떻게 해서 당선됐을까? 모순투성이 경제공약에도 불구 그가 대통령이 된 이유로 세 가지가 꼽힌다.

첫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저성장이 유권자들을 동요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경기회복은 더딘 편이다. 일반인에게는 현 정책당국자들이 아직도 경제불황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들로 보일 뿐이다. 이런 판국에 4%의 고성장으로 미국경제를 재건하겠다는 트럼프의 구호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실물 경제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가 아닌가?

둘째, 가난한 백인들의 상실감이다. 이들은 과거 미국의 제조업이 잘 나갈 때는 중산층으로서 상당히 풍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저학력층의 실질 임금은 과거 40여 년 동안 상승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만 집중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선 원인분석이 필요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고학력층에 유리한 기술진보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즉 정보통신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었던 고학력층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했지만 자동화에 의해 대체되기 쉬운 사무직 혹은 단순 제조업 종사자들의 입지는 급속히 좁아졌다. 하지만 기술진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신 백인 노동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임금의 중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값싼 수입 제품과 저임금으로도 일하려 하는 이주민들에게 뺏기는 일자리이다. 경쟁력을 잃은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실업으로 내모는 주범이 바로 교역 증가와 밀려드는 이주민들이라고 느꼈고 이를 비난하는 트럼프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셋째,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앞다퉈 저소득층을 위하는 정책을 주장하였지만 저소득층의 실제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힐러리가 고액의 강연료를 월스트리트에서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를 가난한 노동자의 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졌다. 인권과 같은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성 정치인에 비해 정치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가 오히려 신선해 보일 수 있었다. 위선적으로 도덕성을 내세우는 기성 정치인들보다 노골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내세우는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유권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제 트럼프의 시대는 시작됐다. 트럼프의 정책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이 미칠 것인가?

첫째,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미국경제는 더딘 속도이지만 어느 정도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공약대로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다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2월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시사했다. 이에 따라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금리인상이 진행되기 전에 금융불안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통상압력의 강화이다. 중국은 곧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미 나오고 있다. 한국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7%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고 그 중 상당액을 미국에서 얻기 때문에 환율조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경상수지가 환율에만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일시적인 현상이며, 한미 간 교역이 양국 모두에게 득이 됨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다. 트럼프는 앞으로 고소득층과 법인에 대한 대규모 감세를 진행하며 오바마케어를 크게 후퇴시킬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소득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또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강력한 조치는 소수인종들의 입지를 좁힐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및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로서는 미국 및 세계경제에서 오는 웬만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 관 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