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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서실장 지낸 이학재 의원 "대통령님, 검찰 조사 받으십시오"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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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재 의원. [중앙포토]

이학재 의원. [중앙포토]

새누리당 친박계 이학재 의원(인천서갑·3선)은 2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청한다"고 밝혔다.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대통령님! 검찰 수사 받으십시오'라는 제목의 장문의 편지글을 통해서다.

이 의원은 "충심으로 말씀 드리건대, 만약 현재 검찰의 수사가 불공정하다고 조사를 거부하시면, 향후 특검 수사와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어떠한 이의제기도 국민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검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자면 앞으로 20여일은 걸린다고 하니 그때까지 검찰 조사를 미루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그 길이 대통령님을 믿고 지지했던, 그리고 모든 권한을 위임했던 국민들에게 해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감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이 평의원이었던 2010년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2011년,  대선 후보가 된 2012년까지 비서실장을 역임한 원조 친박계 인사다. 그러나 올해 4·13총선이 끝난 뒤 혁신비대위원을 맡았고, 최근엔 비주류 중심의 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강성 친박계 의원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다음은 이 의원이 올린 페이스북 글 전문.

대통령님! 검찰 수사 받으십시오.

대통령님께 올립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사과 담화를 보면서 두 번 다 울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담화에서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 전부터,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최고 권력 언저리에 있지 말고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맹세하며 대통령님을 도왔습니다. 능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큰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저라도 마음을 비워야 대통령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후인 2012년 12월 21일 일체의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장관직 제의가 왔을 때 거절했던 것도 제가 초심을 유지하며 임명직을 맡지 않는 것이 대통령님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님께서 섭섭해 하실 만한 일도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해 국회법 파동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사퇴시킬 때, 강성 친박(편의상 이렇게 칭하겠습니다)과는 달리, 부속실을 통해 수차례 사퇴 반대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진박프레임으로 참패한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구성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비대위원 자격으로 유승민 복당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이를 두고 강성 친박들은 ‘이제 이학재는 친박에서 파문당했다’고까지 했습니다만, 저는 진정으로 대통령님을 위하는 길은 이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제가 대통령선거 이후 국회에서 소위 친박이라는 계파 모임을 멀리하고 계파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소수의 친박 패권으로 인해 대통령님께서 계파의 수장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충심을 다해, 또 다시 강성 친박과는 다른 건의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11월 20일 검찰 중간수사 발표가 난 후, 대통령 변호인은 검찰 중간수사 발표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향후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이번 결정은 반드시 철회해야 합니다.
최순실 사태라고 하는 엄청난 일을 겪고 있는 국민의 눈으로 볼 때, 청와대 측에서 검찰 조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부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 청와대 비서실을 통해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결론이 다르게 나는듯하여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번 중간발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지난번 사과 담화 때 국민께 약속한 대로 “검찰조사를 받겠다.”라고 하시고, 더 나아가 “장소도 일반인처럼 검찰청에 가서 받겠다.”라고 말씀하셔야 국민들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 하시는 대통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 중간 수사 발표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성실히 조사를 받으며 입증하시는 것이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순리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마음에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는 것이 이번 사태로 마음을 크게 상한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성난 민심을 조금이라도 달래는 길입니다.
변호인은 검찰 수사 결과가 너무 편파적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특검에서 수사를 받겠다고 했으나, 특검의 수사도 편파적이라 생각되시면 그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국회 본회의에서 이번에 통과된 특검법안에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야당만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특검의 공정성 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므로 좀 더 중립적인 특검 임명을 위해 반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특검법은 통과되었습니다.
이 특검법에 따라 구성될 특검의 수사가 지금 검찰 수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텐데, 그때 가서 또 다시 특검이 중립적이지 않으니 특검 조사도 받지 않겠다고 하실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통령님!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이런 글을 대통령님께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선거 전에는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일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국민행복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애국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게으르지 않게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한 모든 이가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 달 가까이 지역구에 가질 않습니다.
주민들을 뵐 면목이 없고 드릴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꾸 지난 대통령선거 때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면 정말 일 잘 하실 겁니다.”, “국민행복시대를 만들 것입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하실 겁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부모도 자식도 없는 박근혜 후보는 비리문제는 전혀 없을 겁니다.”라고 수도 없이 외치고 설득했던 저의 말을 주민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 같아 지역 주민들을 뵐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 저 100만 촛불 민심도, 그렇게 믿었고, 이런 말들을 기억하는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의 함성일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어제 특검법에 재가를 하셨습니다.
충심으로 말씀 드리건대, 만약 현재 검찰의 수사가 불공정하다고 조사를 거부하시면, 향후 특검 수사와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어떠한 이의제기도 국민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검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자면 앞으로 20여일은 걸린다고 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대통령님!
그때까지 검찰 조사를 미루지 마시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청합니다.
그 길이 대통령님을 믿고 지지했던, 그리고 모든 권한을 위임했던 국민들에게 해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날이 많이 차갑습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오.
2016.11.23.
이학재 올림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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