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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21세기의 중국은 왜 ‘제국’의 길을 걷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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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제국(帝國)은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또는 ‘다른 민족을 통치하는 정치 체계’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한데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공화국(共和國)을 표방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최근 ‘제국’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21세기의 중국에 등장한 제국 논의는 무얼 말하나. 앞으로 중국이 걷고자 하는 길을 예시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야기하는 제국 담론을 보면서 그 이웃인 우리는 과연 어떤 대비를 해야 하나.

중국에서 지배의 정당성 문제는
지배자의 민족적 출신이 아니라
누가 천하를 통일하느냐로 판단

일반적으로 국가는 그 지배의 정당성을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그러나 현재 중국 안팎에선 그 지배의 정당성을 제국에서 찾는 지식인이 늘고 있다. 여기에서 지배의 정당성이란 무언가. 그것은 곧 ‘중화제국(中華帝國)이라는 통일체’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중국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은 그 자체가 안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다는 의미인 ‘대일통(大一統)’이 회자되는 건 그래서이다. 역사상 모든 중화 왕조는 예외 없이 통합된 제국을 목표로 했으며 그 유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중국에서 지배의 정당성은 지배자의 민족적 출신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누구든 대일통을 실현하는 왕조야말로 ‘정통’의 중화 왕조라고 인식하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정통의 근원은 ‘천(天)’이라는 ‘중화’적 정치 신화에서 유래한다.

중국 전한(前漢) 시기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이른바 ‘천(天)→천하(天下)→민(民)→천자(天子)’, 반대로 ‘천→천자→민→천하’로 이뤄지는 천하사상에 의한 지배 정당성 탄생의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중화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여기에서 ‘천하’란 것은 중화나 중국을 중심에 넣고 그 주변에 네 개의 오랑캐를 뜻하는 ‘사이(四夷)’를 집어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대일통이란 의미는 주변의 ‘사이’를 세력 범위 안에 넣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에서는 ‘제국성(帝國性)’ 그 자체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 ‘중국=제국’ 논의에 불을 댕기고 있는 세 명의 유명 지식인을 만나보자. 첫 번째는 미 시카고 대학의 자오딩신(趙鼎新) 교수다. 그는 최근 『The Confucian-Legalist State : A New Theory of Chinese History』란 책을 출판했는데 중국 내 주요 잡지들이 별도의 서평 코너를 마련해 소개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자오는 이 책에서 대일통 국가의 정치 전통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끝난 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일통의 전통이 장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 마오쩌둥(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 시기를 거쳐 시장경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신좌파(新左派)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왕후이(汪暉)다. 그는 ‘대일통의 제국’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과거 조공 체계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과체계사회(跨體系社會·trans systemic society)’다. 따라서 티베트나 위구르, 대만, 홍콩 문제 등은 중국의 변경 문제가 아닌 중심 문제라고 천명한다.

세 번째는 일본의 문화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다. 그는 『제국의 구조-중심·주변·아주변』이란 저서를 통해 중국이 제국의 원리로 미국 제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라타니는 중국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면 소수민족은 물론 한족도 분열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일국 차원에서도 지배의 정당성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유익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 때문에 현재의 중국 정부로서는 ‘제국의 재구축’이 제일 중요한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한데 이 같은 제국의 재구축을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 경제 발전과 사회주의적 평등이 그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최근 중국을 연구하는 주류 학자들이 중국에 대일통 제국의 의식이 현재까지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건 그것이 미래 중국에서 재구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식인들의 ‘제국’에 대한 상상은 중국 정부가 나아갈 방향과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권적 근대 국가의 문제를 극복할 대안적 통치 형태로 제국을 불러오려 한다. 여기에서 제국은 침략 성향을 지닌 제국주의와 달리 단지 정복만 하고 식민화하거나 동화시키지 않는 느슨한 방목 형태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중화제국은 제도만이 아니라 가치다.

어떤 면에서 제도이고 또 가치인가.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에 따르면 정반대의 것으로 보이는 방국(邦國) 제도가 뜻밖에도 제국의 초석이 됐다. 주(周)나라 방국 제도의 핵심은 ‘자치’를 핵심으로 하는 봉건(封建)이다. 봉건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질서였다.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중국에서 이것은 제도일 뿐 아니라 가치이기도 하다. 천하(天下), 국(國), 가(家)는 등급이 뚜렷하다. 이것이 ‘봉건’이다. 경제제도는 정전(井田), 정치제도는 봉건, 사회제도는 종법(宗法), 문화제도는 예악(禮樂)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우수한 제도로 알려진 이 제도를 만든 이는 주공(周公)이었다. 공자(孔子)가 주공을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후 변방인 진(秦)나라가 통일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한(漢)나라에 그대로 보전돼 대일통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성숙한 ‘봉건 질서’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진나라는 대일통의 국가 체제와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만들어 중화 왕조의 기본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민족 집단에 대해선 직접 지배를 하지 않고 ‘자치’를 허용하는 전통을 남겼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대일통 제국을 주요 내용으로 펼치는 중국 담론의 현실이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일통의 제국은 ‘속은 법가이지만 겉은 유가(法裏儒表)’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중국 공산당이 이젠 혁명당이 아니라 집권당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있고 보면 유학과 사회주의의 결합이 앞으론 유가와 법가의 결합으로 전환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면 사회 통합의 주요 이념인 평등은 수사(修辭)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제국 관련 이야기를 상식의 차원에서 보면 ‘중화제국’이란 말 자체가 국민국가체제를 본류로 하는 ‘근대’의 이념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제국』의 저자 헤어프리트 뮌클러에 따르면 ‘패권’은 형식적으로 평등한 정치적 행위자들로 이뤄진 집단 내에서의 우세함인 데 반해, ‘제국’은 이 같은 최소한의 형식적 평등마저 없애고 약한 국가들의 지위를 종속국이나 위성국으로 낮춘다. 형식과 실질의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제국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국민국가(nation-state)에 대립하는 문명국가(civilization-state)의 틀을 상정한다. 근대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전통 시기 제국론으로 올라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제국론이 물론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담론이긴 하지만 그것이 중국의 현실 문제와 긴장 관계 속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순간 현실 정치에 이용될 가능성과 더불어 반(反)서구적 중국 중심주의로 떨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국은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국과 제국으로의 회귀가 임박한 중국, 양자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동아시아를 다원적 세계로 이끌어 중국이 대국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국인 중국과 인접한 우리 입장에선 중국과 대립하면서도 공존해야 한다. 150년 전의 ‘서구의 충격’ ‘일본의 충격’에 이어 우리는 다시 ‘중국의 충격’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이제 양국의 국력과 규모의 비대칭성을 냉철하게 인식하면서도 주권국가로서 할 말은 하면서도 수용과 거부의 양면작전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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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자도 “어진 자만이 좋은 것은 좋다고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한다(唯仁者 能好人 能惡人)”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인자(仁者)란 사심 없이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조경란

성균관대학교에서 중국의 사회진화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등 여러 저서가 있다. 아산서원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며, 홍콩 중문대학 및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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