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없는 「삼양동 담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복잡하게 얽힌 신민당의 당권문제와 개헌노선 문제를 놓고 9일 아침 극적(?)으로 이뤄진 이민우총재와 김영삼고문의 「삼양동 담판」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것 같다. 이에 따라 신민당 사정은 불투명한 안개속을 좀더 헤매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총재와 김고문 두 사람은 1시간 여의 단독밀담 후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나누며『근간 다시 만나기로 했다』면서 헤어졌지만 이날 회동으로 두사람 사이의 거북한 관계가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웃으며 악수하는」사진을 찍기 위해 김고문이 사전 통보도 없이 삼양동 자택을 아침 일찍부터 찾아 갔을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5월 전당대회의 당권을 놓고 김고문의 상도동 측은 「김영삼총재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 왔고 이에 대해 이총재가 협조하기는커녕 반발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보임으로써 두 사람간의 관계는 크게 틀어져 왔다.
더우기 당내 비주류·중도일각에서 이총재를 협상론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총재 재추대 움직임마저 보이자 상도동측과 삼양동 사이에는 반목하는 기류가 흘렀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대립속에 이총재는 선민주화론을 계속 고집했고 김고문 등 주류측은 이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총재는 「술츠」방한 이후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였다.
김고문 측이 이총재와의 회동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이총재는 그때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를 회피해왔다.
결국 김고문이 9일 아침 삼양동을 불시 방문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담판을 통해 이런 여러 문제들에 매듭을 짓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무엇보다 당장 이총재의 선민주화론과 두 김씨의 「선민주화론 백지화」주장이 크게 대립돼 클로스업 되고 있는 상황을 완화시킬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과는 큰 성과 없이 끝난 것 같다.
그 동안 김고문과 대립·갈등을 보여도 단독대좌하는 경우 번번이 설득당하거나 심지어 굴욕에 가까운 양보도 했었던 이총재가 김고문과의 회동에서 「버틴」 것은 그의 독자노선 추진의지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아침 식사 전 기습방문>
김고문이 아무런 예고 없이 삼양동 이총재 자택을 방문한 것은 9일 상오 7시 방문.
김고문은 비서2명만 대동했고 이때 이총재는 한복차림으로 아침식사도 하기 전으로 측근과 비서5∼6명과 함께 이날 일정 등을 검토 중이었다. 이총재는 김고문의 느닷없는 방문에『웬일이시오, 어서 들어오시오』라며 놀라는 표정이었고 이에 김고문은 『못 올데를 왔읍니까. 안녕하셨읍니까』고 담담하게 인사.
두 사람은 주변을 물리친 뒤 안방에서 1시간 여 동안 밀담.
두 사람은 8시40분쯤 함께 아침식사를 한 후 8시55분쯤 단독회동을 끝내고 기자들을 만났다.
식사 전. 이총재는 코피를 두 번씩 이나 시켜 마시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날 회동은 지난1월15일 외교구락부에서 만난 이후 몇 일 만에 이루어진 것.
물론 외교구락부회동이후에도 당사 또는 성배지구당 개편대회 등에서 두 사람이 만나기는 했으나 그때는 간단한인 사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밥상을 내가고 보도진들이 들이닥치자 두 사람은 『사진을 찍어대고 야단스럽게 굴게 아무 것도 없는데…』고 머쓱해했다.
-김고문의 방문이 상당히 파격적인데 무슨 이야기들을 하셨나요.
△김고문=인우(이총재)댁에 오는 게 뭐가 파격적인가.
△이총재=갑작스럽게 김고문이 집을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 당황도 했고. 신문들이 우리가 마치 만날 수 없는 사이인 것처럼 떠들어대고 그래서 김고문이 왔는가고 생각했지. 다른 얘기는 없었고 시국에 대한 걱정과 가정일들을 얘기했을 뿐이야. 시간을 다시 결정해서 또 만나기로 했어요.
△이총재=김고문이 오늘은 직접 오셨으니 다음번엔 내가 만나자고 해야지. 다음에 내가 시간을 결정해서 연락하기로 했지.
-김고문은 어떻게 오게 됐읍니까.
△김고문=이총재 얘기대로 신문 등에 우리가 서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인 것처럼 자꾸 비치고 있고 성배지구당 개편대회때 사진을 봐도 마치 비틀어진 사람들처럼 나오는 등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왔어요.
지구당 개편 때 서로 웃고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눴는데 꼭 이상스런 사진만 싣더구먼. 온종일 웃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오.
시간을 정해 다시 만나서 충분히 얘기하자고 했어요. 근간 만날 겁니다.
-선민주화론 등 개헌노선문제도 거론했읍니까.
△김고문=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니까. 여당측의 반응 등 아주 가벼운 얘기만 나눴어요. 그러려고 했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읍니까.
△김고문=가벼운 얘기만 나눴을 뿐이 예요.
(9시쯤 김고문은 일어나 민추협으로 향하고 이총재만 기자들과 다시 잠시 자리를 같이 했다)
-김고문의 예고없는 방문은 왜 이뤄졌읍니까.
△이총재=여러분들이 해석해 보시오.
-언제쯤 다시 만날 생각입니까..
△이총재=내가 시간을 정하기로 했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라는 등의 단서는 없고,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
-이민우 구상 등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읍니까.
△이총재=김고문이 예고없이 올 때에는 할 얘기가 뻔하잖아. 얘기 조금했지만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이총재도 확대간부회의 주재를 외해 9시15분쯤 당사로 출발) '
김의장과 20여분요담
김고문은 삼양동 회동을 끝낸 뒤 민추협사무실로 돌아와 김대중공동의장과 20분 여 요담.
김고문은 『마치 최근에 이총재와 내가 당권적 차원에서 이런저런 잡음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지만 나는 신민당총재를 두 번씩이나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전혀없다』고 설명.
김고문은 삼양동 회동 내용에 대해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을 받고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해보자. 우리도 이제는 인생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인만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명예며 우리가 어떻게 신민당을 만들어 왔는지 생각해보자고 했다』고 담변.

<뒤늦게 소식 듣고 당황>
이총재·김고문간의 회동사실을 모른 채 김고문과의 월요정례회동을 위해 9일 아침 민추협사무실에 나온 김대중의장은 8시 라디오뉴스를 통해서야 두 사람간의 회동소식을 듣고 측근들에게 확인시키는 등 다소 당황한 모습.
김고문은 이날 김의장에게 사전 연락없이 이총재를 만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어제 비서진들에게 말씀을 드리라고 했는데 이행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한 뒤 비서진들을 나무라기도 했는데 김의장은 『바쁘다보니까 잊어버렸겠지』라며 다소 누그러진 표정.
한편 민추협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총재·김고문의 전격회동과 관련해 『이총재가 끝내 고집을 부린다면 오늘을 계기로 신당창당작업이 본격화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보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어차피 정리해야 할 부분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신당설을 중심으로 한 화제가 무성.

<두 김씨에 노골적부만>
이어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선 이총재와 동교·상도동계부총재간에 「선민주화론」을 놓고 열띤 공방전.
회의에서 이총재는 공식석상에선 드물게 두 김씨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시키는 등 끝까지 선민주화론포기를 거부.
다음은 회의 발언요지. △박용만 의원=전당 대회를 앞두고 당의 목소리가 하나가 돼야한다. 혼선을 정리하자.
△이총재=총재단회의 결정사항이 잘못 발표됐다. 나의 선민주화론은 백지화 할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 권력구조문제는 선택적 국민투표에 의해 해결하면 된다.
△이중재 부총재=우리당의구심점이 두 김씨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층재의 선민주화론은 마치 7개항을 선행하면 당론 변경도 가능한 것 같이 오해되는 점이 문제다. 악용될 소지도 있으니 이시간 이후 그런 표현을 하지않는 게 좋겠다.
△최형우 부총재=「이민우구상」 「선민주화론」 이란 표현은 자꾸 거론하면 오해의 요소로 표출되니 그런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하자.
△이총재=우리당은 집단성단일 지도체제다. 지난해12월26일 총재단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병행투쟁 한다고 의견일치를 보았고 그 뒤 시무식과 1욀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또 확인하지 않았나.
그런데 바로 그날아침 두 김씨는△범행투정부가 △대화단절불사 △이민우 구상이 직선제를 희석시킨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나는 직선제당론을 변경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두 김씨가「이구상」이 내각제를 수용하는 것처럼 말해 문 제가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관리인이라 하더라도 내 나이 74세 아닌가. 여러분이 실세, 실세하지만 실세가 있으면 허세도 있는 법이여.
△양순직 부총재=문제는 선민주화론이 내각제를 수용하는 것 같이 정부·여당과 언론이 몰고 가는 데 있다. 변행투정론을 재확인하되 선민주화론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
△이총재=그건 논리에 맞지 않는 얘기다. 민주화조치는 민정당이 들어주든 아니든 추진해나가면 된다. 내가 당론위배를 한 적이 있나. 이민우구상을 마치 내각제 수용처럼 몰아 세운 것이 누군가.
△유제연 사무총강=하루속히 세분 (이총재와 두 김씨)이 만나 모든 문제를 논의하는 게 좋겠다.
△김수한 부총재=분당세등 국민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하나로 뭉칠 때다.
(김태룡 대변인이 『민주화선행조치가 정부에 의해 이행될 경우에도 직선제당론은 절대 변경되거나 협상대상이 아니다』는 등 선민주화론에 분명한 쐐기를 박는 내용의 발표문을 회의에 내놓자 주류측 부총재들은 모두 찬성했으나 이총재가 『표현이 너무 딱딱하다』고 다소 역정을 내며 반대해 김수한 부총재가 발표문을 재작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