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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페셜 칼럼D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기후변화를 거꾸로 돌리려는 미국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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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눈을 뜬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헛수고다. 일손이 안 잡히는 날들의 연속이다. 국내 발 미증유의 정치적 사태로 모두가 분노와 허탈에 빠진 가운데, 미국 발 대선의 이변도 뒤통수를 쳤다. 누군가는 “트럼프가 이기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확실하다”고 했다지만, ‘설마’가 현실이 돼 버렸다. 트럼프는 아웃사이더지만, 정권 인수 팀의 면면은 워싱턴의 로비스트 인사이더와 가족이다. 새 시대에의 기대는 접어야 할 모양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어째서 정치만은 나라 안팎에서 이다지 절망적인 것일까.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 미국은 트럼프 당선…미증유의 정치적 혼란
트럼프의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은 에너지 산업의 규제 철폐를 예고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난화를 '미 제조업 약화 노린 중국 음모'로 간주
기후·에너지·환경을 통합적으로 다루려면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한데…

트럼프 행정부와 EPA, 그리고 파리기후협정 탈퇴(?)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트럼피즘은 ‘오바마 유산’ 털기의 시리즈를 연출할 조짐이다. 막상 대통령으로 일하려고 하면 선거 캠페인 구호를 뒤집어야 하는 일이 많을 터이다. 하지만 기후·에너지 정책의 시대착오적 역주행은 확실시된다. 환경보호청(EPA) 인수 팀을 에벨(M. Ebell)에게 맡긴 게 신호탄이다. “기후변화 이론을 뼛속 깊이 부정한다”는 화석연료 옹호자가 청장이 될 것이라니(뉴욕타임즈) EPA 간판부터 바꿔야 할 형국이다.

트럼프는 파리협정의 해체를 원한다. 기후변화가 실체라는 과학적 근거 자체를 부정한다. 그의 주장은 UN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결과는 물론 미 국방부의 분석과도 배치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서 19세기 제2차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1.2도 올라갔고, 최근 5년이 인류역사상 가장 더운 기간이었다고 발표했다. 이산화탄소의 연평균 농도는 1958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초로 400ppm을 넘어섰다고 했다.

이런 데이터와는 상관없이, 트럼프는 기후변화가 시급한 국가 안보는커녕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이라고 한다. 심지어 지구온난화 개념 자체를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중국의 날조극(hoax)으로 본다. 이렇다 보니 오바마 행정부의 파리 기후협약 비준을 무효화하고, 유엔 기후변화 계획에 대한 미국의 수십억 달러 지원도 중단한다는 태세다. 시에라 클럽의 사무총장은 이런 트럼프를 가리켜 ‘기후변화를 믿지 않고 아무 대처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계 유일의 지도자’일 것이라 비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행동계획과 청정전력계획은 물 건너갔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기후행동계획(Climate Action Plan, 2013.6)에 반대하고, ‘석탄과의 전쟁’이 자국의 에너지 의존을 적국에게 맡겨 기업의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발표한 ‘미국 우선 에너지 정책(America First Energy Plan)’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통 에너지 산업에 대한 규제 철폐를 예고하고 있다. 탄광 개발을 활성화하고, 셰일 에너지의 수압파쇄 공법에 대한 규제도 풀고, 미국 연안과 대서양 공공지역에서의 석유·가스 채굴 기술에 대한 메탄 규제 등도 철폐한단다. 오바마 정부가 불허한 키스톤 송유관 사업도 재추진한다. 탄소세나 탄소배출 총량제는 일자리 죽이기라고 반대한다.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 2014.6)은 오바마의 핵심 환경정책이었다. 2030년까지 발전소의 탄소 배출을 2005년 대비 1/3 감축한다는 이 규제가 발효되는 경우 화력발전소는 폐업 위기에 몰린다. 현재 위법성 여부를 놓고 소송이 벌어진 상황에서, 트럼프와 에벨은 계획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탄소 배출은 오바마 계획에 비해 2024년까지 16% 늘어나게 된다.

에너지 신산업의 앞날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해서는 기술혁신에서의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형태의 에너지 개발과 보급 추진할 것이라 했다. 그런데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 관련 주가는 떨어지고 화석연료 주가는 올랐다. 오바마 행정부가 연장한 연방정부의 세액 공제가 폐지되면 미국의 태양광·풍력·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전망이다.

기후변화 관련 연구개발과 기술 투자 예산 1000억 달러도 삭감해 경제 살리기에 쏟겠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에 제안한 녹색기후기금(GCF)의 사무국은 4년 전 우리나라가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으로 기후변화 연구개발과 IPCC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활동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의 이런 정책 방향에 대해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를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의 약 30개 주는 연방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자체 기준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을 장려해 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수 기업이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고,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의 생산 단가 저하로 성장 모멘텀도 생기고 있다. 미국 내 태양광 산업은 가파르게 고용을 늘리고 있어, 정유와 가솔린 업계의 근로자 수를 넘어섰다.

트럼프는 수자원에 대해서만은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5년 내리 농작물과 용수 스트레스의 가중으로 인해 주지사가 사상 최초로 용수 25% 절감의 강제 조치를 내렸다. 트럼프는 해수담수화를 수자원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캘리포니아주 일부지역(Carlsbad)에서는 2015년 10억 달러짜리 담수화 시설로 하루 1억9천만 리터의 물을 공급하고 있다. 트럼프가 모르는 것은 수자원 고갈의 위협이 기후변화와 직접 얽혀 있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스토리라인
그렇다면 기후변화의 스토리라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133년간(1880∼2012년) 0.85℃ 올랐다. 산업화 이후((1750년~) 1도 올랐고(지구 연간 평균기온 14.1도), 온실가스 농도는 40% 증가했다. 북극지방의 기온 상승이 2-3배 더 높아 해빙이 가속된다. 해수면 상승은 110년간(1901∼2010년) 19cm 높아졌다. 지구온난화는 가뭄·홍수·폭염·한파·산불·사이클론 등 극한현상(extreme events)을 유발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온의 점진적 상승으로만 알고 있다. 기후변화로 에너지·식량·수자원은 안보 차원의 전략적 자원(strategic resource)이 됐고, 이를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이 심각하다.”
스토리는 계속된다. “온난화 원인은 화석연료 연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대표적이다. 탄소 배출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원위기·경제위기·정치사회적 위기의 복합위기가 심화될 것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에서는 196개국(EU 포함)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수단을 제시하고 실천에 옮기는 신기후체제에 합의했다. 파리협정은 지난 11월 4일 발효됐고, 현재 109개국이 비준한 상태다.”

파리협정의 미래
파리 기후협정은 비준국이 55% 이상이고 그 총 배출량이 55%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 발효됐다. 예상보다 빨리 성사된 것인데, 미국·중국의 리더십에 힘입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당선으로 비상등이 켜졌다. 오바마와는 달리 그는 상원에 파리 협정 비준 표결을 요청하겠다 한다. 상·하원도 기후변화 대응에 비우호적인 공화당이 장악했으므로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렇다고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즉각 탈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규정상 협정 당사국은 3년간 탈퇴할 수 없고, 의사를 밝힌 뒤 공지기간 1년을 거쳐야 한다. 어쨌거나 자발성에 기초한 국가별 기여방안(INDC) 이행의 성격상 미국의 태도가 다른 나라의 잇단 동요를 촉발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적 리더십을 차버리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상위 2개국은 중국(28%)과 미국(16%)이다. 그 뒤를 인도(5.8%), 러시아(4.8%), 일본(3.8%), 독일(2.2%)이 잇고, 한국은 7위국(1.8%)이다, 다음에 캐나다(1.7%), 이란(1.6%), 브라질(1.4%), 인도네시아(1.3%)다(Statista 2016). 이들 11개국이 세계 총 배출량의 68%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과 인도는 그대로 갈 것이란 예측도 있다. 중국은 대기오염 등으로 매일 200건 이상 시위가 벌어지는 터라 매우 다급하다. 기후 협상에서 줄곧 선진국 책임을 역설해 오다가 2015-2016년 자국의 누적 배출량이 미국을 앞지르면서 태도가 바뀌게 됐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기후행정 기구 개편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기존의 에너지기후변화부(Department of Energy and Climate Change, DECC)를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 BEIS)로 이관해 통합시켰다. 영국은 2008년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을 제정한 선도국이다. 그런데 EU 탈퇴로 국제적 영향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에 겹쳐 행정 조직까지 약화된 것이다. 이에 DECC 전직 각료들과 시민단체는 국제 기후회담에서의 대표성, 감축 목표 달성, 청정 에너지 보조금 등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 비판했다.

한국의 기후행정 체제 개편
우리 정부도 지난 6월 기후변화 행정구조를 개편했다. 국무조정실이 부처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여기에 기획재정부가 배출권 할당 관련 정책을 수립·조정한다. 산업부·농림부·환경부·국토부는 각각 해당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집행 업무를 담당한다. 범부처적 기후변화 대응 강화를 위한 개편이라지만,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약화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1990-2012년 33%)은 OECD 국가 중 1위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짧은 산업화 역사이면서도 누적 배출량이 세계 16위(1880-2012)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OECD 평균치를 상회하고, 연간 배출량도 2010년 증가율이 전년 대비 9.8%다. 2008년부터 녹색성장을 강조했으나, 온실가스 배출(2007년-2011) 증가율이 GDP 성장률을 상회했다. 정책 수단의 실행에 차질을 빚으며, 2010년에도 배출량이 10% 증가했다.
며칠 전 기후변화 온라인 매체(CLIMATE HOME)는 한국·사우디아라비아·호주·뉴질랜드를 ‘2016 기후 불량(villains 악당) 4대 국가’로 발표했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의 컨소시엄인 CAT(2009년 설립)가 해마다 32개 주요국의 감축 행동을 분석한 결과다. 그 근거로는 1인당 탄소 배출량 증가, 석탄화력 발전소 수출 재정 지원,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기 등이 지적됐다. 작년 말 독일 민간연구소(German Watch)와 유럽기후행동네트워크(CAN Europe)가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16’에서도 58개국 중 54위였다. 5년 전에 비해 23 단계가 떨어진 순위다.

지구온난화 음모론의 성격과 배경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우여곡절을 겪는 가운데, 뜬금없이 등장하는 것이 ‘지구온난화 음모론’이다. 그 골자는 “온난화 이론은 기온 상승을 과장하고 이산화탄소를 주범으로 몰아붙인 음모”라는 것이다. 2009년 영국의 BBC 방송은 98년 이후 11년간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음에도 그 기간 동안 기온이 상승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조직적으로 그 반대 내용의 주장을 막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1992년 9월 서울의 영국 문화원(The British Council)에서는 ‘온실효과 음모’(Greenhouse Conspiracy) 다큐가 상영됐다. 필자는 교수시절에 그 필름을 봤다. 이퀴녹스 시리즈(Equinox Series)로 미국·영국의 과학자 인터뷰를 엮은 것이었다. 골자는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실한 오류다.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결론은 이론적으로나 모델로나 타당성이 없다”였다.

음모론의 주창자들은 기온 측정 장소가 열섬(heat island) 효과 지역에 치우쳐 있고, 기상위성 데이터에 온난화 조짐이 없다고 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빙하기가 온다던 과학자들이 돌연 온난화로 돌아선 것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과 기온 상승 사이의 상관성도 부정했다. 다른 온실가스(질소 산화물, 메탄, 오존 등)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면서, 이산화탄소가 이롭다는 주장까지 폈다.

트럼프의 주장은 이런 음모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미국 대통령이니 기후 재앙은 재앙을 만난 격이다. 2001년 고어를 꺾고 당선된 부시 대통령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며 내건 논리도 이 음모론이었다. 잊힐 만하면 등장하는 음모론은 복합적인 환경 이슈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 속의 기후변화 에피소드
지구온난화는 일찍이 역사 속에서 예고되고 있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과학자 푸리에(J. B. Joseph Fourier, 1768-1830) 남작은 온난화를 최초로 예측했고, 1891년 스웨덴의 아레니우스(S. A. Arrhenius, 1903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산업화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이산화탄소가 두 배로 증가해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5도 정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기후는 인류문명의 번영과 소멸에 가장 결정적인 변수이다. 문명사에서 기상이변은 ‘대량살상무기’였다. 2012년 ‘사이언스’지에는 마야문명의 멸망이 극심한 기상이변 때문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철과 바퀴를 쓰지 않고도 고도의 석기문명을 일군 마야인 300만 명이 900년경 홀연히 사라진 이유를 그렇게 규명한 것이다. 그들은 중미 열대우림지역에서 우기에 빗물을 모아 가뭄에 쓰는 저장시설과 수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기온 강하로 장기간에 걸쳐 가뭄이 반복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한편 기온이 온화했던 900년-1300년 사이 유럽 인구는 4배로 늘고, 바이킹 족이 융성한다. 그러다 1300년 이후 급격한 기온 강하와 기상이변으로 가뭄과 홍수, 추위와 더위, 건기와 우기가 오락가락하면서, 국정의 리더십이 추락하고 혼란에 빠져든다. 1355년의 최악의 기상이변으로 바이킹 족이 멸망한다. 14세기 중반의 유럽은 흑사병(Black Death)으로 5년간 2500만-3400만이 사망한다.

기상이변 상태에서는 번식력이 큰 쥐가 가장 빨리 적응한다. 인간의 면역력과 적응력은 가장 취약하다. 그런 상태에서 아시아 상선을 타고 온 쥐가 흑사병 균을 유럽으로 전파한다. 아시아와 북미 대륙에서도 4천만 명이 희생된다. 기상이변으로 흉년이 들고 농민층이 붕괴되고 폭동이 일어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은 빵 값이 가장 비쌌다고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 자연적 vs 인공적 요인
지구 역사에서, 20세기 초반 이전까지의 기후변화는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 흑점 활동 변화로 인한 태양 에너지 변화, 우주선(cosmic ray),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와 가스, 엘니뇨, 태평양 십년 주기 변동 등이 그것이다. 지구 나이 45억 년에서 생명체가 최초로(5억4300만 년 전) 나타난 고생대부터 21세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는 다섯 차례 대멸종을 겪었다. 첫 번째(4억40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 멸종을 시작으로 중생대 백악기 말(6500만년 전)에 공룡을 비롯해 지구상 생물종의 75%가 사라졌다. 대규모 화산 활동과 지각 운동, 운석의 충돌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자연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고려해야만 데이터가 맞아 떨어진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고, 그것을 흡수하는 메커니즘이 사라지는 것이 원인이다. 온실가스 증가는 마치 온실의 유리천장과 같이 열 발산을 막아서 지구의 기온을 높인다.

햇빛을 반사하던 빙하가 녹아 물이 되면 열을 흡수한다(1,100배). 열팽창으로 해수면이 상승한다. 해수 담수화와 수온 변화로 난류·한류의 열염순환(熱鹽循環) 과정이 교란된다. 멕시코만 난류가 차단되면 북대서양에 혹한이 닥친다. 북극 한파의 차단벽인 제트기류 약화로 냉기가 하강한다.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 형성이 교란돼 비와 바람을 몰고 다니는 대기 흐름이 망가진다. 수증기 순환 교란으로 엘니뇨와 허리케인이 심해진다. 기상이변이 잦아지는 이유다.

UN IPCC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보나?
UN IPCC는 기후변화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 공동으로 기상·해양·경제학 등의 전문가 3천여 명으로 발족된 후 90년부터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분석을 담은 기후보고서를 발간한다. 2007년에는 그 공로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과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작년 10월에는 우리나라의 이회성 박사가 IPCC 의장으로 선출됐다.

IPCC는 제1차 보고서를 낼 때만 해도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했다. 하지만 2014년 제5차 보고서는 화석연료 사용 등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일 확률이 95% 이상으로 ‘지극히 높다(extremely likely)’고 결론지었다. 2012년 11월부터 1년여 동안 발표된 2259건의 기후변화 관련 논문 중 인간 활동에 기인한 온난화 현상을 부정한 논문은 단 한 건이다. 현 추세대로 간다면 21세기 안에 지구가 1만년 동안 겪었던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 한다. 생물종 멸종, 식량생산 흉작·질병 만연·사회경제적 갈등 등 전면적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은 주로 온실가스 감축 위주였다. 그러나 최근 IPCC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따른 부담과 공통편익(co-benefit)을 고려하여 적응과 완화의 정책 수단을 찾고, 국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30년까지 추가적인 노력이 없다면 2100년까지 2℃ 이내로 기온 상승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WEF의 연례 리스크 보고서에 나타난 기후변화
또 다른 유력한 분석은 세계경제포럼(WEF)의 연례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다. 2015 리포트는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의 리스크에서 기후변화 적응 실패, 극단적 기후현상 등을 최대 위협요인으로 꼽았다. 또한 이들 5개 부문 리스크 사이의 연계성 분석에서도 기후변화 적응 실패가 가장 위헙적이라고 평가했다. 5개 부문에서 10대 리스크를 뽑은 리스트에서도 기후변화가 최대 리스크로 꼽혔다. 2016년 보고서도 향후 10년간 가장 큰 리스크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뒤를 이어 수자원 위기, 대규모 난민, 에너지 가격 충격이 꼽혔다. 실은 이들 리스크는 모두 기후변화와 연계돼 있다. 환경론자가 아닌 글로벌 경제기구가 이처럼 기후변화를 세계 경제·사회 리스크의 핵심요소라 경고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도전과 과제
21세기 첨단기술문명도 언젠가 멸종의 때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후위기 충격에 얼마나 적응하며 또 얼마나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겠는가가 시급한 문명사적 과제다.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는 진화하는 존재이지만, 단기적인 급격한 충격에 적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030년이면 지구촌이 식량 부족, 물 부족, 석유 값 폭등이라는 ‘최악의 폭풍(perfect storm)’에 직면할 것이고(J. Beddington, 2009), 심화일로의 기후변화와 국경을 넘는 대량 재난민 이주가 복합돼 대규모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 한다.

기후변화의 경제적 손실에 대한 분석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티븐 추(S. Chu) 미국 전 에너지부 장관은 재보험회사의 통계를 인용, “2013년 한해 기후변화의 직접적 재앙으로 2천억 달러 손실이 발생했다”고 했다. 영국의 스턴 리포트(Stern Report)는 현 추세대로라면 21세기 말 기후변화 손실이 글로벌 GDP의 20%가 되리라 했다. 우리나라의 2012년 분석 결과는 21세기 말까지 2,8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누적될 것이라 예측한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은 지구 평균치에 비해 두 배쯤 더 심각하다.

그러나 2030년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시급한 현안으로 놓고 국정 기조와 전략을 구체화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정치는 선거 단위로 작동한다. 그리고 감축 수단 등 다양한 변수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주제 자체가 어느 나라, 어느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명사적 거대담론이다. 무기력하게 느끼기 때문에 모두의 참여를 통한 실천적 접근이 어렵다.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체계적, 통합적 접근의 거버넌스 체제가 기본이다. 기후-에너지-환경을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반영하되 에너지 수요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지수 개발과 계량적인 시스템 등 법적·제도적·기술적 실행 기반도 구축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 작업을 총괄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민관 파트너십이 요체다. 그런데 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