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구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구두처럼 가격 차이가 심한 상품도 흔치 않다. 한 켤레에 5천원 짜리가 있는가 하면 8만5천원 정도 주어야 신어 볼 수 있는 물건도 있다.
한동안은「살롱구두」로 통하는 수제화가 최고급 구두로 판을 치더니 요즈음은 기계로 만들어 내는 유명 메이커들의 기성화가 고급 구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구두도 의복과 마찬가지로 유행에 민감한 제품인 만큼 그때 그때의 유행과 소비자들의 기호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달라지고 가격에도 기복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또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제법, 어떤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서도 값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고급 원피로 꼽히는 도마뱀 가죽의 경우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데 드는 2.4평방피트의 값이 3만6천원선인데 송아지 가죽(카프스킨)상품은 1만1천원, 물소나 들소가죽인 버펄로는 7천7백원, 그리고 가장 값싸고 많이 쓰이는 풀 그레인(2년이상된 쇠가죽)은 5천선이다.
구두를 만드는 방법에도 시멘트 제법(구두창을 속창과 본창 2개로 구분), 모카신제법(통가죽으로 속창까지 감싸 올리는 방법), 굿이어제법(3중창에 코르크를 끼워 넣고 가죽사이에 천을 넣는 고급제법)등이 있어 어떤 제법을 쓰느냐에 따라 공정·시간 등에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들쭉날쭉한 소비자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같은 원피를 소재로 하고 디자인이 비슷한 구두라도 점포에 따라 최고 2배까지 가격차이가 생긴다.
현재 국내시장의 제품공급 루트는 대체로 ▲유명메이커의 이른바 브랜드 제품 ▲살롱 구두 ▲마춤 구두 ▲시장 제품 등으로 나누어진다.
브랜드 제품이란 금강, 에스콰이어 등 대 메이커 제품으로 기계화된 기성화를 특징으로 한다. 공정의 90%가 기계화돼 있다.
살롱구두란 서울 명동일대에서 볼 수 있는 고급수제 기성제품으로 전체 공정의 30%정도는 기계화되어 있으나 나머지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맞춤 구두는 수제화라는 점에서 살롱구두와 같으나 주문생산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디자인 등에서 살롱구두에 떨어지는 곳이 많다. 주로 주택가에 자리잡은 영세업자들이 만드는 제품이다.
시장구두는 시장의 양화점에서나 좌판을 벌이고 내다 파는 기성제품들로 제품의 품질에 대한 보증을 받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같은 풀그레인을 소재로 한 구두라도 시장의 기성화는 한 컬레에 1만5천원이면 살수 있는데 주택가의 마춤집에 가면 1만8천원, 살롱에서는 2만5천원, 그리고 유명 메이커의 브랜드 제품이 되면 3만원을 주어야 한다.
이처럼 점포에 따라 가격 차이가 생기는 것은 디자인, 제법, 점포의 규모·위치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대량 생산으로 원가가 싸게 먹혀야할 기계제품(브랜드 제품)값이 가장 비싸다는 점이다.
구두업계 전문가들 얘기로는 공정의 90%가 기계화 되어있는 대 메이커 제품의 경우 총 매출액 중 제품원가의 비중은 60∼70%인데 비해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살롱구두 등 마춤구두는 80∼9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율을 기준으로 원가를 계산해 보면 풀그레인을 소재로 한 대 메이커의 3만원짜리 구두는 원가가 1만9천5백원선, 2만5천원짜리 살롱구두는 2만1천원선, 주택가의 양화점 구두나 시장의 기성화는 1만1천∼1만2천원 정도가 원가라는 계산이 나온다.
대 메이커 제품은 원가가 살롱화보다 2천원 정도 싼데도 판매가격은 오히려 5천원 정도가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점에 대해 한 대 메이커의 관계자는 원가가 덜 먹힌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그러나『광고비와 관리비가 많이 들어 그 정도 값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값싼 구두를 비싼 값에 사 신고 있는 셈이다.
대 메이커의 기성화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A사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A사의 85년 총매출액은 2백78억1천9백만원이었다. 이중 원가를 뺀 매출액 총이익은 1백16억3천6백만원으로 매출액 이익률은 41.8%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광고비등이 포함된 판매 및 일반관리비가 91억7천6백만원으로 매출액이익의 79%를 차지, 순이익은 매출액의 1%인 2억7천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돼있다.
제품의 품질과 관계없는 광고비나 일반관리비 등을 소비자에 떠넘기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 메이커 제품이 관리비가 많이 드는 이유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품을 직매장을 통해서만 판매하고 일반 상품처럼 유통시키지 않는 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유통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값싼 제품을 공급하기보다 폐쇄적인 유통구조를 고수함으로써 이미지 유지에 더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측도 구두와 같은 패션제품은 친절 등 서비스와 매장 환경이 생명이므로 일반유통을 시킬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고급스런 매장환경과 상표를 중시하는 소비풍토 아래서는, 이 같은 주장도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찾는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찾을 곳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구두 제품에 대한 지식이 없다. 저급 소재가 고급 소재로 둔갑하고 열악한 제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고급품으로 행세해도 알기가 어렵다. 영세업자의 제품일수록 품질에 대한 신뢰성은 더욱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 메이커의 믿을 수 있는 제품이 터무니없는 값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면 소비자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지 않을 수 없다.<배두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