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 정치부기자|협상기피하는 「협상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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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 모두 임시국회를 소집한다는 방침을 정하고도 총무회담 한번 열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박종철군 사건과 2·7추도회, 부산 복지원·대전성지원 사건 등 시비를 가리고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할 국회소집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실종된 개헌정국을 되찾기 위해 국회를 열어야 한다는 데서 여야는 모두 임시국회소집원칙을 결정해놓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소집시기·회기·의제 등을 논의, 결정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쁘게 서로 만나 절충하고 조정작업을 벌여야 할 사람들이 곧 여야총무들이다.
그러나 여야총무들은 지난 14일 이재형국회의장의 귀국 출영을 계기로 만나긴 했으나 공식총무회담은 대표회담 이후에나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회소집에 대한 여야절충을 대표에게 떠맡긴 셈이다.
이에 대해 이한동 민정당총무는『기껏 합의해 보아야 번번이 깨지는 총무회담은 해서 무엇 하느냐』 고 했고, 김현규 신민당총무는 『저쪽이야 당내에서 레일을 깔아놔야 서서히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냐』 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하다. 총무들이 이처럼 접촉을 꺼리는 것은 지난 임시국회에서 총무간에 합의했던 인권특위의 설치가 결과적으로 무산됨에 따른 불신이 있는데다 만나봐야 서로의 입장이 쉽게 조정 될 수 없는 정치상황 때문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흔히「협상창구」 로 불리는 원내대표의원이 국회 소집문제의 협상을 기피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처사다.
김용채 국민당총무의 지적처럼 『대표회담에서나 국회소집 문제해결의 가닥이 잡혀질 것을 기대하는 형편』이라면 대표회담이 총무회담으로, 총무회담이 부총무회담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가뜩이나 풀어야할 난제가 산적한 이 마당에 여야대화의 가능한 모든 통로는 보호되고 그 기능은 한껏 넓혀도 오히려 부족한 실정이다.
더구나 총무회담은 여야의 가장 중요한 창구이며, 다른 폭은 다 막혀 일전불사를 다짐하는 극한적 상황일지라도 열려 있어야할 최후의 대화선이다.
그런 중요한 기능을 총무들이 스스로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되기 어려운 것이다.
비록 여야간의 거리는 멀고 타협여지는 극미하더라도 접촉·대화·타협의 시도와 노력만은 총무간에 끊임이 없어야 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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