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정부복귀의 시험대로|임시국회정방 여야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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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임시국회 소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헌특 정상화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면서 이번 임시국회가 『합의개헌추진의 마지막 기회』 라느니, 『야당에 개헌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계기』 니 하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노태우대표위원은 16일 당직자회의에서「최후의 추진책」을 시도할 국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민정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헌문제를 매듬짓는 최소한의 교두보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결심이든 실행에 옮길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말들로 미루어 보면 이번 임시국회는 합의개헌을 위한 민정당의 「최후의 시험대」 가 되고, 이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헌법문제에 관한 여권의 독자적인 결심과 실행만이 남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민정당 당직자들의 최후 통첩식의 이런 긴박한 발언들은 시기적으로 개헌논의를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88년 2월의 정권교체를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는 것이 민정당의 기본입장이고, 이번 임시국회를 놓치면 장내에서의 개헌논의의 기회를 포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3월에 들어가면 야당의지구당 개편대회가 시작되는 등 전당대회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하고 개학후의 학원 상황 등 장외의 입김에 정국은 필연적으로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헌정국으로 확고히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면 정국의 표류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이와 함께 최근 고위층의 정국주도권회복에 대한 독려도 개헌정국회생 노력에 가속도를 더해주고 있다.
또 한가지 민정당이 이처럼 개헌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최근 연속적으로 터진 인권문제에 대한 일종의 만회작전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
박종철군 사건에 이은 복지원·성지원사건 등으로 민정당은 임시국회를 열자는 야당요구를 외면할 명분은 없었던 셈이며, 국회를 연다면 그런 사건만 다룰게 아니라 고문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돌리는 무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것 같다.
말하자면 인권문제는 걸러 희석시키고 개헌 문제는 부각시켜 정국의 주 흐름으로 다시 올려 놓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양 김씨가 다시 내건 선택적 국민투표에대해 구체적 시행방안을 제시할 경우 타당성여부를 적극 논의한다는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헌특정상화가 단순히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니고 합의개헌의지의 표현임을 과시하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헌특가동에 신민당이 끝까지 거부할 경우 민정당의 독자적인 헌특운영, 개헌일정 강행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야비난, 대국민 설득의 보다 확고한 근거를 포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민정당의 이 같은 활발한 공세는 신민당의 입장과 내부사정으로 보아 아직은 큰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개헌의 핵심문제는 권력구조부문으로 이는 고도의 정치력에 의해서만 타결이 가능하고 국회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개헌문제는 헌특의 손을 떠났고 실세회담 등 고취정치협상의 대상이라는 신민당의 입장이 최근의 당내사정으로 보아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다.
박군 사건을 계기로 당내주도권을 잡고있는 동교동계는 기본적으로 헌특무용론을 고수하고 있으며, 임시국회도 장외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하고있다.
여기에다 5월 전당대회를 겨냥하는 상도동계로서는 비주류를 누르고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김대중씨와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므로 동교동의 당 운영입김이 거셀 수 밖에 없다.
헌특에 대한 가장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민우총재도 구속자의 석방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결국 헌특정상화가 타결되려면 아직도 요원한 형편이다.
민정당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 춘투의 시발점으로 상장되는 박군의 표재가 끝나고 각 부처의 청와대 업무 보고가 끝난 뒤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야의 이 같은 첨예한 대립으로 타협전망이 어둡자 정가에서는 다시 「벼랑론」이 대두하고 있다.
노대표는 이번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평소의 지론인 한국인은 협상의 게임에는 능하지 못하지만「최후순간의 타결」 (brinkmanship) 에는 익숙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타협적인 투쟁을 하다가 벼랑의 마지막 지점에 가면 타협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강조는 민정당이 결국 지금까지의 개헌전략인 신학기전 개헌완료→상반기 개헌후유증 수습이라는 기본구도를 수정, 국면의 변화에 따라 개헌을 추진하는 「임기응변형」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임시국회 절충과정에서 「최후」니 「마지막」이니 말들이 많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5월의 신민당전당대회를 개헌추진의 또 한번의 변수로 내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민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신민당에 실세총재가 등장 하든가, 그 과정에서 신민당의 내부 모순이 폭발하든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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