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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의 뚜벅뚜벅 라틴아메리카] 멕시코②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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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전 세계 수많은 매니어를 거느리고 있는 멕시코 출신 화가 부부다. 이 세기의 아티스트의 작품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여행지가 바로 그들이 활동 무대로 삼았던 멕시코시티다. 남미의 화려한 색감을 그대로 화폭에 재현한 작품을 멕시코시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상상이상으로 즐겁고 풍성한 멕시코시티 미술여행, 함께 떠나보자.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칼로와 리베라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사실주의 화가로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화풍에 멕시코 특유의 정신을 잘 구현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멕시코시티 남부 코요야칸 지역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 일대에 생가와 박물관과 미술관이 밀집해 있다.

까사 아술 작업공간.

까사 아술 안뜰.
까사 아술 부엌.
까사 아술 정원.
까사 아술 정원.
까사 아술 프리다 칼로의 작업실.
까사 아술 프리다 칼로의 침실.
마르크시즘이 병을 낫게 하리라-1954년작-까사 아술 소장품.

코요아칸의 ‘까사 아술’은 말 그래도 파란 외벽이 눈에 띄는 ‘파란 집’으로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1929년부터 1954년까지 함께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1958년 디에고 리베라가 국가에 이 집을 기증하면서 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됐다. 내부로 들어서면 중앙에 넓은 정원이 있고 건물 1층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관, 2층엔 프리다 칼로가 생전 작업하던 작업 공간과 그녀의 침실이 복원되어 있다. 한 해 2만5000여 명이 찾는 명소로 일찍 방문하지 않으면 1~2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가 입던 옷.

프리다 칼로는 국립예비학교 입학이 허가된 최초의 여학생 35인 가운데 하나였다. 국립예비학교는 현재 교육부 건물이 있는 곳인데 멕시코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교육기관으로 엘리트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칼로와 리베라가 만난 것은 그녀가 18살 예비학교를 다닐 무렵으로 교육부 건물에서 프레스코화 작업을 하던 리베라를 보고 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칼로는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었던 1925년 9월 17일 전차에 올랐다가 버스가 이 전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옆구리에 철골이 관통하는 중상을 겪는다. 이로 인해 세 군데의 척추 골절, 쇄골 및 갈비뼈 골절 등 심각한 부상으로 오랜 기간 보정기를 입고 병상에 누워 생활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이후엔 교육부 건물 외벽에 벽화작업을 하던 리베라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 부부는 디에고 리베라의 불륜과 이혼 및 재혼을 반복하는 등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부부이상의 동료이기도 했다.

아나우아깔리 외관.

아나우아깔리 내부.
아나우아깔리 내 벽화 밑그림.

코요아칸엔 디에고 리베라가 지은 ‘아나우아깔리 박물관’이 있다. ‘아나우아깔리’는 아즈텍족의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물로 둘러싸인 집’이다. 1930년 리베라가 농장을 만들기 위해 구입했지만 이후 그는 생각을 바꿔 자신이 직접 수집한 5만여 점의 고대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을 짓기로 한다. 화산석으로 지은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 외관이 독특한데 내부 역시 별도의 내장재를 쓰지 않고 오로지 돌로만 지었다. 지하 및 1~3층의 공간에 마야, 아즈텍 등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옥상에선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리베라가 사망한 1957년까지 완성되지 못했던 이 건물은 1964년에 이르러 그의 친구이자 건축가였던 후안 오고르만이 공사를 끝냈다. 2층의 넓은 홀에 전면 유리창을 달아 빛이 내부로 들어오게 만들었는데 이 공간에서 록펠러센터에 걸릴 예정이었던 그림 ‘인간, 우주의 지배자’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상단부에 걸려있는 ‘전쟁의 악몽, 평화의 꿈’이라는 작품의 스케치 본에 눈길이 간다. 1952년 그려진 이 작품은 리베라가 파리에서 열릴 멕시코 미술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렸지만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전시회에 걸리지 못했다. 이후 작품이 중국을 거쳐 되돌아올 때 사라졌고 현재 스케치 본만 남아 아나우아깔리에 걸려있다.

뮤세오 에스투디오 디에고 리베라.

뮤세오 에스투디오 디에고 리베라.
뮤제오 에스투디오 디에고 리베라 내부.

코요아칸에서 4㎞ 떨어진 작은 콜로니얼 타운인 ‘산 앙헬’에 있는 ‘뮤제오 에스투디오 디에고 리베라’는 1931년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후안 오고르만이 설계해 1932년에 완성한 집으로 두 채의 건물에 옥상부에 연결 다리로 이어져있다. 건물 하나는 프리다 칼로를, 다른 하나는 디에고 리베라를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 부부는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이 건물은 영화 ‘프리다’에서도 등장하는데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의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장소로 나온다. 이곳에선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작업실을 둘러볼 수 있다. 콘크리트 외벽에 파이프 라인을 밖으로 설치하고 선인장으로 담을 쌓는 등 건축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국립자치대학교(UNAM) 중앙도서관 벽화.

국립자치대학교(UNAM) 벽화.

코요아칸 지구엔 대학 도시인 ‘시우다드 우니베르시타리아’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대학인 국립자치대학교가 자리한 곳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약자인 UNAM을 따서 ‘우남’이라 불린다. 1551년 설립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재학생 수는 10만 명이 넘으며 사립학교에 비해 저렴한 학비와 좋은 교육 시스템으로 인기가 높다. 1968년 대대적으로 일어난 학생운동의 중심지로 여전히 멕시코 정치, 사회 운동을 이끄는 대학 가운데 하나다. 대학은 거대한 미술관과도 같은데 대부분의 건물 외관엔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해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등 멕시코 벽화운동을 주도한 주요 예술가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멕시코 벽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이를 보기 위해 국립자치대학을 방문한다. 대학의 본관, 중앙도서관, 이과대학, 올림픽 경기장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된다. 이 대학도시는 그 예술성에 높은 평가를 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 중앙부.

도심의 역사지구의 공공건물 곳곳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남아있다. 꼭 방문해야 할 곳은 템플로 마요르 인근 레푸블리카 아르헨티나 28번지에 있는 교육부 건물이다. 소지품 및 신분증 검사를 끝내면 건물 안뜰로 들어갈 수 있다. 안뜰을 접한 1층과 2층 외벽에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있다. 유럽에서 돌아온 리베라는 1922년부터 1929년까지 멕시코의 국립예비학교와 교육부 건물에 벽화를 그렸는데 주요 주제는 인디오들의 농업과 삶이었다. 사회 비판적이고 예리한 그의 감각이 잘 담겨 있다. 이 같은 주제의식은 ‘5월 1일’, ‘땅을 점거하려는 가난한 농민들’ 등 대부분의 작품에 드러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영향으로 서사적 리얼리즘 회화를 지향했으며 군부독재와 자본주의 역시 각종 역사적 인물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비판해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소깔로 광장 동쪽에 있는 국립 궁전역시 꼭 들어가 보아야 할 곳이다. 국립궁전은 대통령 집무실과 행정부처, 1800년대 말 의회 장소로 쓰였던 홀이 있는 곳으로 궁전 2층을 향하는 계단에는 리베라가 그린 거대 벽화 ‘멕시코의 역사’ 있다. 이 작품은 1921년부터 1935년까지 그린 것으로 멕시코 원주민의 부흥과 스페인 침략, 멕시코 독립에 관한 주요 사건들을 담고 있다. 중앙에는 1910년부터 1917년까지 농민 혁명을 이끈 영웅인 에밀리오 자파타가 자리한다. 남측 계단에도 미국에서 돌아온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멕시코의 현재와 미래’를 나타낸 벽화가 있다.

국립궁전 디에고리베라의 벽화-멕시코의 역사 중앙부.

국립궁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멕시코의 역사.
국립궁전 벽화-에르난 코르테스와의 만남.

‘무랄리스모’라 일컫는 멕시코 벽화 운동은 1920년대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으로 멕시코 혁명이후 전통과 자부심을 되찾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당시 멕시코의 문맹률이 높아 국민들은 말과 글을 잘 몰랐는데 그에 비해 그림은 매우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자 의사 전달 도구였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바스콘셀로스는 국립궁전을 비롯하여 모든 학교와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려 국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도록 했고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벽화 운동 그룹은 아즈텍과 마야 문명 등 고대문명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의 아픔, 멕시코의 혁명과 역사를 벽화로 그려내 누구나 멕시코의 역사를 한 눈에 깨칠 수 있게 했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이전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미국과 유럽에 이 벽화운동이 알려지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예술궁전 외관.

예술궁전 외관.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이 두 곳 더 있다.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과 ‘예술궁전’이다. 알라메다 공원에 있는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엔 리베라가 1947년에 그린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의 오후’라는 대형 벽화가 있다. 메인 홀 전체를 차지한 작품은 높이 4,175m 폭 15.67m으로 알라메다 공원을 배경으로 식민제국의 착취와 멕시코 혁명 등다양한 사건 및 인물들을 그리고 있는데 중앙에는 해골 여인 까뜨리나와 그 왼쪽에는 어린 자신의 모습과 프리다 칼로를, 까뜨리나 오른쪽에는 화가인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를 그렸다. 좌측 상단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우측 상단엔 멕시코 원주민 대통령인 베니또 후아레스 등을 그렸으며 이 안에 멕시코 민중의 어려운 삶과 혁명, 식민지의 암울한 분위기, 독재정권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디에고 리베라 인간, 우주의 지배자.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 외관.

알라메다 공원을 접하고 있는 ‘예술궁전’에서 꼭 보아야 할 작품은 디에고 리베라의 ‘인간, 우주의 지배자’이다. 노동자를 주제로 문명사회를 풍자한 이 작품은 원래 1934년 록펠러센터에 걸리기 위해 그려졌지만 ‘반자본주의’를 드러냈다는 언론의 비평과 더불어 그림 속의 ‘레닌’을 지워달라는 록펠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철거되기에 이른다. 그림은 종교와 과학, 독재의 몰락을 표현 했는데 레닌을 비롯해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등장하고 시민을 억압하는 경찰과 카드놀이를 즐기는 부유층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철거 당시 이 때 벽화는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고, 이후 다시 그려졌다.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안뜰.

시간이 된다면 멕시코 남부 교외 소치밀코 인근의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까지 방문하자. 칼로, 리베라 부부와 깊은 인연을 맺어 온 돌로레스 올메도 여사의 소장 미술품을 전시한 곳으로 고대 유물 6000여 점을 비롯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등이 150여 점 가량 전시돼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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