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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할머니, 브레이크 대신 액셀 밟아 2명 사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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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할머니 폭주 사고 2명 사망 [TV아사히 뉴스 캡쳐]

83세 할머니 폭주 사고 2명 사망 [TV아사히 뉴스 캡쳐]

초고령화 사회 일본이 7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운동 능력과 인지 기능이 크게 떨어진 노인 운전자가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일으키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운전자의 치매 여부에 대한 검사를 한층 강화할 예정이지만 의료인력 확충 등 과제가 적지 않다.

지난 12일 오후 3시쯤 도쿄도 다치가와(立川)시 국립병원기구 재해의료센터에서 83세 여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갑자기 인도로 돌진했다. 병원 주차장 요금소의 개폐식 차단장치를 부순 뒤 차도를 가로질러 30대 남녀 두 명을 덮쳤다. 피해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숨졌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동전들이 떨어져 있었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급제동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차요금을 투입하려다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시청은 머리와 가슴을 다쳐 입원한 운전자가 회복되는 대로 과실운전 치사 혐의로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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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도치기(?木)현 대학병원에서는 84세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들어 세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아침 요코하마(橫浜)시에서는 87세 남성의 소형 트럭이 등교 중이던 초등학생들을 치어 1학년 남학생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일으킨 87세 운전자는 “어디를 가려고 달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차와 오토바이 사망사고 중 7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는 12.8%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05년 7.4%에서 5% 포인트 이상 급증했다. 경찰청은 자치단체와 함께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자율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면허증을 반납하면 운전경력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버스와 택시를 이용할 때 증명서를 보여주고 요금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해 75세 이상 면허 보유자 약 480만명 중 반납자는 2.5%인 12만4000명에 그쳤다.

경찰청은 2009년부터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면허갱신 시에 인지기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치매 우려가 있는 운전자’와 ‘인지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운전자’,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 우려가 없는 운전자’로 분류한다. ‘치매 우려 운전자’가 신호 무시 등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적발돼 의사의 치매 진단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한다.

하지만 75세 이상 운전자가 지난해 1년간 일으킨 교통사고 458건을 분석한 결과 ‘치매 우려’ 판정을 받았던 사람은 31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 단계 아래인 ‘인지기능 저하 우려’ 운전자가 181명으로 40% 가량을 차지했다. 인지기능 검사 당시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을 개연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허점을 막기 위해 내년 3월부터 고령 운전자의 인지기능 검사를 한층 강화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을 시행한다. ‘치매 우려’ 운전자는 교통 위반이 없어도 수시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나머지 운전자들도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곧바로 검사를 받아 치매로 진단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문제는 고령 운전자들의 치매 검사를 담당할 의료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치매 우려’로 분류된 사람만 약 5만명에 이른다. ‘인지기능 저하 우려’는 약 50만명으로 집계됐다. 정확한 치매 진단을 하려면 한 사람당 최소 반나절이 걸린다. 전문의 숫자도 크게 부족하다.

의료진들은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 우려가 없다고 진단한 노인이 교통사고를 일으킬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동시에 소송을 당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중교통이 부족한 시골지역 노인들은 치매 진단을 받아 면허가 취소되면 당장 생활에 큰 불편을 겪게 돼 교통편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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