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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여성에 치우친 현실 타개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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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15면

1 세계한류콩그레스에서 기조연설하는 프레드릭 마르텔 프랑스 지부장.

2 제3회 세계한류콩그레스에 참가한 세계 각 지역의 대표들. [사진 세계한류학회

이 연재의 마지막으로 ‘한류학’에 대해 소개하겠다. 그동안 세계한류학회는 5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16개국에 지부를 두면서 한류학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아직도 국내에서는 한류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류학은 말 그대로 한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류의 정의를 연구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류를 여러 학문적 관점에서 통섭적 연구를 하는 것 또한 한류학인 것이다. 그런데 국내나 해외나 우리가 한류학을 시작했을 때는 한류를 왜 연구하느냐, 한류가 연구할 가치가 있는 학문적 대상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한류는 곧 없어질 것인데 그게 연구할 가치가 있느냐는 질타 아닌 질타였다. 이런 질문에 가장 시원스레 대답한 학자가 UC버클리의 사회학 교수 존 리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한류학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위대한 유대인 석학 게르숌 숄렘은 주위로부터 왜 유대의 신비주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가라는 질타를 자주 받았다. 그러나 카발라(유대학)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 숄렘은 그의 유명한 반박문에서 난센스는 난센스일망정 난센스를 연구하는 것은 학문이라고 했다. 더욱이 현대 한국 대중문화를 난센스라고 치부하더라도 단적으로 말해 이 특정한 생활사의 한 단면은 현대 한국을 아주 극명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류는 우리의 사고에서 간과될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와 문화의 복잡하고 모순된 현실을 사고하는 데 있어 불가결한 소재다.


현대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급변하는 사회 중 하나이면서도 타의 모범이 되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 현대 한국에 한류가 등장했으니 한류야말로 21세기 한국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생활사의 한 단면인 것이다. 불행히도 그러나 한류를 장기적인 측면에서 학문적으로 먼저 연구한 이들은 서양·일본·싱가포르·대만·홍콩 등의 학자였다. 또한 몇몇 초창기 한국의 한류 연구자는 기본적으로 한류의 롱런을 믿지 않았고 ‘홍콩 조폭영화’와 같이 한때의 유행으로 봤을 뿐만 아니라 한류를 서양 이론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대중문화 현상으로 파악했다.


이렇다 보니 세계한류학회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난무하던 한류에 대한 연구들은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 의해 한국과 한국 문화를 심하게 왜곡한 글이 대부분이었고, 한국 학자들조차 이러한 외국의 왜곡된 이론들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제일 많이 이야기하던 한류 이론은 소위 문화에누리(cultural discount)론으로 한류는 서양·일본·중국의 문화보다 싸게 디지털화돼 중화권에 덤핑됐다는 이론이었다. 그러한 디지털 급조 과정에는 서양·일본·중국의 문화를 혼합시켜 그럴싸하게 콘텐트를 꾸몄다는 문화혼종론(cultural hybridity)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 두 이론을 창시한 사람들은 서양인·일본인·중화계 인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한류가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자 그 학문적 정통성에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됐다.


[문화근접론자들도 함구하고 있을 뿐]


우선 2012년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는 싸구려 디지털 다운로드판이 아닌 마스터 테이프로 편당 20만~30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것은 할리우드 드라마와 유사한 가격이다. 아직도 일본의 콘텐트 대여점에서는 한류 드라마 DVD가 팔리거나 대여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대만 드라마가 일본에 진출하려 해도 한류 드라마와 비슷한 성적표를 낼 수 없었다. 대만 드라마를 시청한 일본 한류 팬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았다. “일본 드라마를 그대로 베꼈어요. 한류 드라마랑 완전히 달라요.” 일본 문화나 서양·중국 문화를 그럴싸하게 혼종·디지털화해 싸게 팔면 대박이 난다는 혼종론·에누리론이 무참히 쓰러지는 상황이다.


또 다른 일각의 해외 학자들은 한류의 성공을 문화근접론(cultural proximity)으로 풀이하고자 했다. 한류는 결과적으로 중국이나 일본·동남아시아처럼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나라에서만 팔리는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한류가 아프리카·중동·러시아·유럽·남미·북미로 번지자 문화근접론자들은 전 세계 문화가 한국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우기거나, 그래도 어쨌거나 중국이나 아시아에서만 제일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생떼를 썼다.


설사 일본 문화가 우리와 비슷하고 중국 대륙의 문화가 우리 것과 비슷해 한류가 이 두 나라에서 크게 유행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한류는 21세기에나 돼서야 일본과 중국에서 유행하게 됐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문화근접론자들은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혐한주의자들이나 중국·동남아의 몇몇 학자는 한국이 한류를 앞세워 문화 침탈을 하는 신제국주의 국가라고 공공연하게 질타한다. 우리가 영어를 전 세계의 공통어로 쓰고, 미국 달러나 유로를 국제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문화와 경제력을 칭송해 그런 게 아니라 500년에 걸친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몽고 침략 이후 강대국의 침략이나 식민지화에 시달려 온 약소 민족이다. 이런 약소 민족이 한류를 전 세계에 배급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한국도 제국주의 국가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학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한류가 한국과 같은 소수 민족과 식민지를 경험한, 수탈당했던 민족으로서의 ‘한’을 거침없이 대중문화로 승화해 비슷한 경험을 한 지구상의 수많은 소수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콘텐트로 부상하자 뾰족한 한류의 성공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외국 학자들이 제국주의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설사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라 치자. 그렇다면 왜 한국을 그렇게 미워하는 일본이나 중국의 한류 팬들이 한류를 그리 사랑할까? 한국 군대의 주둔을 경험했다는 베트남마저 왜 그리 한류를 사랑할까? 한류 제국주의 이론은 이론이기보다는 대중적 험담에 가깝다.


[우리의 힘으로 한류학을 정립해야]


한류의 가장 중요한 팬덤(fandom)적 요소는 소위 말하는 젠더의 분리(gender divide) 현상이다. 전 세계의 한류 팬은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이렇기 때문에 한류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젠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일본의 여성, 중국의 여성, 동남아의 여성, 이슬람의 여성, 유럽의 여성, 남미의 여성들이 그렇게 한류를 좋아하는가를 먼저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둘째로 한류의 무엇이 전 세계의 젊은 여성에게 어필하고 있는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한류가 여성 위주 하위문화(subculture)의 대중문화 현상이라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한류가 미국이나 일본, 영국의 대중문화처럼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보편적 문화로 발전할 수 있는가이다.


여성 위주의 한류 문화이기 때문에 여성 작가가 대부분인 한류 드라마와 ‘미인형’ 남성 가수들이 판치는 K팝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파생상품은 화장품일 수밖에 없는 한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 파고들어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을 배양해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관 주도의 한류 관광 연구와 마케팅 학자들이 주로 발표하는 한류 마케팅 연구가 대세를 이루고, 인문학에서는 젠더 현상을 보지 못한 채 문화근접론이나 혼종론에 매달리기 바쁜 현실이다.


세계한류학회는 한류학을 새로이 정립하고 학문으로 연구하는 전 세계 학자가 모여 정식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본부는 서울에 있고 국내 지회는 전국 4군데, 해외 지부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 16개국에 산재해 있다. K팝을 사회역사적 연구로 집대성한 존 리 교수의 책도 발표됐다.


현대 한국의 생활사인 한류를 정확한 이론적 배경과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모은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발표하는 작업을 통해 한류가 21세기 현대 한국과 한국인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인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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