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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식평가의 채점 교묘히 이용-「예체능계 실기고사 잡음」 왜 일어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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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인예·체능계 실기고사에 대한 말썽과 의혹이 잇따르자 문교부가 뒤늦게 실태조사에 나서는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으나, 묘안을 찾지못한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예·체능실기고사 부정사례가 보도 (본보12일자 사회면) 되자 일반고교는 물론 예·체능고교 출신동급생끼리 서로가 재능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고교3년간 재능을 인정받아온 학생은 낙방하고 훨씬 못한 수험생이 합격했다는 항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대해 대학측은 고교까지의 평가와 대학의 채점결과가 다룰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고교교사나 학부모들은 이렇게 합격한 대부분이 시간당 30만원의 교수비밀과외와 3천만∼5천만원, 최고 1억원의 사례금을 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천만원 (3장) 이면 가능하고, 5천만원 (5장) 이라야 합격이 보장된다」 는 잡음의 실상을 추적한다.

<실태>
◇음악=<사례1> 올해 B음대에 합격한 C여고 출신 박모양(17)은 지난해 1년동안 합격을 위해 3천만원이상을 썼다.
박양은 B음대 이모교수에게 주당 1시간씩 피아노 비밀 교습을 받을 때마다 20만원씩의 교습료를 냈다. 또 학과장 특별면담때는 특별사례비를 별도로 마련해야 했다.
이교수가 음악회를 할때는 입장권 1백여장 이상을 소화해야했으며 그밖에도 이교수의 집안일을 도와야했다.
실기전형날인 지난1월14일 새벽 박양은 이교수의 지시에 따라 미리 녹음해둔 피아노곡 테이프 5개를 박양이 지원하는 대학에 심사위원으로 배정된 교수 5명에게 돌렸다.
테이프 1개에 1백만원짜리 수표를 동봉했고 이교수에겐 특별사레를 했다.
교수5명의 명단을 알아낸 것은 순전히 이교수의 역량. 문교부가상오6시 각대학별로 공동관리 교수를 배정했으나「중간연락책」등을 통해 30여분만에 알아냈다는것.
테이프를 전달받은 교수는 시험장에서 수험생이 가번호를 달고 커튼에 가려졌지만 테이프를 통해 미리 익혀둔 음색·연주기법의 특징등을 토대로 부탁받은 학생을 가러내 최고점을줄수 있다는것.

<사례2>K여고 김모양(17)은 올해 C대를 지원했다. 실기시험전날 모교 시간강사인 개인교습강사로부터 『3장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김양부모는 평소 김양의 재능이 「수」 로 평가받아와 C대 합격은 무난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안심할 수만도 없어 3백만원을 준비했다가 3천만원이란 사실을 듣고 포기했다.
김양은 불합격됐고, 이는 돈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모양(18)은 실기시험을 본 다음날부터 친구들에게 『합격된 것이나 다를바 없다』 고 합격기분을 미리 냈고, 실제로 발표결과 합격했다는 것. 이양은 학력은 물론 내신·실기에서 모두 김양에게 훨씬 뒤져있었다.
◇체육=<사례1>서울 A예고C모양(18)은 모대학 무용과출신인 교사로부터 심사위원에게 줘야한다며 실기시험 하루전날 2천만원을 요구받았다.
학력고사 2백20점에 졸업전 최종실기 시험에서도 「수」 판정까지 받아 희망대학 합격은 무난하다는 말을 들어왔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3백만원을 급히 만들어 담당교사에게 전달했으나 액수가 너무 적다고 거절당했다.
C양은 대학입시에서 불합격됐고 뒤늦게야 학력고사 1백75점에 내신 15등급인 모회사 사장딸은 합격됐으며, 함께 시험을 치렀던 김모·임모양도 학교에선 합격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나 나란히 합격된 사실을 알게 됐다.

<사례2>B예고 K모양(17)은 실기시험전날 평소 다니던 학원강사로부터 3천만원을 내면 합격시켜 준다는 제의를 받았다.
K양은 국민학교때부터 무용에 재주를 보여 예능계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합격자 발표날 K양은 학력고사성적 1백44점에 15등급이고 키가 작고 뚱뚱해 실기고사에서도 늘 낙제점을 받아온 L모양이 합격한 사실을 알고 놀랐다.
K양은 결국 10년동안 해온 무용을 포기하고 인문계로 전환해 재수학원에 등록을 마쳤다.
K양부모는 『모여대 무용과 교수는 「입학보장조로 빌라1채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제자들을 통해 돈을 모아왔다』고 말했다.
◇미술=<사례1>H대를 지원한 L모양(17)은 다른 친구들이 미술개인교습소에 다닐때 수강료 때문에 관인 미술학원에 다녔다.
개인교습소는 월30만원의 교습료를 내야하고 관인학원은 10만원이면 됐기 때문이다.
L양은 뒤늦게 개인교습소에 나간 친구들은 거의 합격했으나 관인학원에 나간 몇몇은 자신을 비롯해 불합격됐다는 것을 알고 크게 후회했다.

<뿌리깊은 인맥>
예능은 특히 교수인맥이 복잡하게 얽혀 조직적인 정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명한 교수를 정점으로 전임강사·시간강사·대학원생등이 모여 이른바 「사단」(師團) 을 형성하는 문하생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입학시험때 합격여부를 좌우하는 것도 이들 조직의 역량이다. 음악·미술에 특히 심하고 체육의 경우 무용이 심한편. 이들은 교수에 따라 자기나름의 「풍」을 감조하는 경향이 있다.
입학시험때는 이 「사단」 의 문하생들이 합격흥정의 중개인 역할을 맡게 되고 이것을 얼마나 훌륭히 해나가느냐에 따라 그사람의 역량이 측정된다고 어떤 교사는 털어놨다.
문교부가 입학부정을 막는다고 서울에서는 공동관리를 하고 있으나 실효가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러한 조직이 도사리고 앉아 관련 교수들끼리 서로 합격시켜 주어야할 수험생명단을 교환하거나 「테이프 돌리기」, 미술의 경우엔 화풍에 따른 「물감타주기」, 시험문제 사전누설등의 수법으로 수험생을 식별케하여 서로 합격시키는 「바터」를 하기 때문이다.
공동관리 교수배정이 실기시험당일 상오6시에 교수개인별로 알려지면 불과 30여분지나 누가 어느 대학으로 배정됐다는 사실이 집계되는 것도 모두 이들 「사단」의 활약이다.

<제안>
이같은 입학비리를 완전히 해소할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적으로 50%는 「기부금 입학제」 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나머지 절반이라도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도 있다.
학부모 하병훈씨(51·서울신길동421) 는 공동관리를 더욱 철저히해 교수들을 학력고사때처럼 외부와 시험전날부터 차단, 시험당일도 차단된 상태에서 채점장에 들어가도록 해 누가 어느대학에 배정될지를 철저히 모르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음대 정진자교수는 실기시험을 2일에 걸쳐 실시, 교수를 바꿔서 공동관리토록해 채점기회를 분산해야한다고 말했다.

<학교당국>
서울대음대 백병동교수는『예능계 입시를 둘러싼 끊임없는 말썽은 없어져야한다』 며 『그러나 일부학부모가 말하는 것처럼 부정채점으로만 시험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며 주관식 채점이 갖는 원천적인 채점결과 때문에 사실이상으로 와전되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의 미술과 교수는『학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실력을 일반적으로 과대평가, 시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말썽을 일으키는것 같다』 며 『현재와 같은 공동관리제에서는 어떤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지만, 낙방시킬수는 없는 일』 이라고 설명했다.
S예고 미술담당 최모교사는 『학생들이 재능보다는 부조리를 대학입학의 지름길로 생각, 교수비밀과외등을 선호하는 경향도 시정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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