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헌팅|이혜성<이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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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자나 남자나 젊은 시절에 인생의 좋은 반려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집요하건만 여자의 경우를 조금더 결정적인 것으로 여기는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남자 대학생들의 걸 헌팅에 관한 은어보다 여자대학생들의 보이 헌팅에 관한 은어가 더욱 많아지고 그 내용도 점차 노골적으로 되어가는것 같다.
이것은 물론 내가 여대생들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요즈음 여대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보이 헌팅의 풍경을 묘사하는 단어나 은어들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노골적이다.
한동안은 2말3초, 즉 2학년말이나 3학년초에는 정해놓고 사귀는 남자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하더니 지금은 1말2초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재학생들의 얘기이고 4학년에서는 4말역전이라고 해서 졸업을 앞두고 역전의 기회가 또 있으니 분발하여 새로와지자는 것이라한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것은 보이 헌팅을 목표로 자신들의 모습을 「개」로 묘사하는 은어들이다.
1학년은 발발이-보이헌팅을 위해 여기저기 미팅마다 바쁘게 좇아다니는 모습에서 비롯된것.
2학년은 스피츠-그들의 연령이 빛나는 스피츠처럼 윤기있고 예쁘게 성숙되는 시기임을 나타내는 것.
3학년은 불독-한번 입에 물면 놓치지 않음을 상징하는것.
4학년은 미친 개-아무나 보는대로 물 뿐만 아니라 일단 물면 누구나 미치게 만든다는 뜻.
이 은어들은 한결같이 여대생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것같아 듣기에 민망한데 여대생 자신들은 대부분이 이 은어에 상당한 공감을 하고 있다니 매우 놀랍다.
이 은어와는 달리 아주 고상하고 격조있게 자신들을 표현하는것이 또 있다. 1학년은「풍요속의 빈곤」, 2학년은 「빈곤의 악순환」, 3학년은「빈익빈, 부익부」 ,4학년은 「체제속의 안정」.
뭔가 우리 사회에서 식상하게 들어온 단어들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했기 때문에 대학생다운 지적인 예리함이 번득여서 듣기에 신선하고 기분이 좋다.
이것은 모두 재치있고 귀여운 은어들이면서도 「어떤」 남자와 사귀느냐 보다는 「언제」 남자를 만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한낱 우스갯소리로만 들어넘길 수 없는 어떤 절박함이 느껴진다.
딸을 대학에 보내는것은 결혼을 위한 준비과정으로만 생각하고 딸의 신체적인 결혼 적령기를 놓칠세라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의 조바심이 이런 은어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바가 클것 같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적령기를 묻자 그대로 절대적인 조건으로 인식하는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이 은어의 진정한 근원일수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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