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자백」증거로 채택해선 안된다|인권보호위한 「수사성역」추방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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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립무원의 상태로 조사를 받으면서 완전히 발가벗긴 상태에서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자들은 계속 잠을 재우지 아니하였으며 대략 절반쯤 밥을 굶겼읍니다.
특히 전기고문·물고문을 앞두고는 밥을 굶겨 배고픔의 고통보다는 곧 고문을 당하게 될것이라는 공포감이 더욱 컸습니다. 고문을 할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린채 고문대에 눕히고 발목과 무릎·허벅지와 배·가슴을 묶었읍니다. (김근태 민청련 전의장의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중 일부)
85년9월 경찰에 연행됐던 김근태씨는 검찰에 송치된이후 계속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도 검창도 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법원에 고문의 흔적을 내세워 증거보전신청을 했으나 「피고인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증거보전이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또 고문에 의한 자백은 공소권의 남용이라고 주장했으나 역시 법원은 그런 것을 공소권의남용이라고 인정한 전례도 없고 고문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치않고 유죄판결을 내려 현재 강릉교도소에 복역중이다.
이밖에도 김씨의 부인 인재근씨는 김씨를 고문했다는 이유로 담당경찰관들을 고소했으나 서울지검은 고문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려 현재 재정신청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고문등 가혹행위에대한 사법부의 제동은 일반형사사건에서는 상당히 이뤄지고 있으나 공안사건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
「부천서성고문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권모양사건의 경우 권양이 고문을 당했다고 담당 문귀동경장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문형사의 업적이 많다는 이유등으로 불기소결정을 내러 재정신청을 냈으나 역시 법원은 받아주지 않았다.
법원이 공안사건의 적법수사절차에 인색한것은 진주경찰서 경찰관3명에 대한 불법구금·가혹행위에 대한 재정신경사건의 대법원 핑퐁결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82년 유인물을 소지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김성삼씨(25·당시강원대1년)에 대해 가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김씨의 형이 경찰관을 고발했다.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하자 재정신청을내 대법원은 85년 5월 『관련 경찰관은 불법 구금혐의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결정, 파기환송했으나 고법에서 이에 불복하는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은 스스로 1년남짓만에 결정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었던것.
그러나 공안사건과는 달리 일반형사사건에서는 사법부가 고문등에 관해 잇달아 제동을 걸어온게 사실.
작년8월 서울원효로 윤경화노파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사형이 구형된 고숙종피고인에게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며 특히 수사상의 절차를 강조했었다.
『이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수사기관(경찰)에서 피고인에게폭행·협박·신체구속의장기화등으로 범죄사실의 자백을 강요하였다고 의심되므로 피고인의 경찰에서의 자백은 임의성이 없다.
또 검찰에서의 자백은 임의성은 있으나 현장의 객관적상항과 모순되고 합리성이 결여된데다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점등으로 미루어 신빙성이 없으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수 없다.』
82년2월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14부(재판장 김헌무부장판사)에 의해 내려진 이 판결은 같은해7월의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정재파피고인 1심판결문 『자백의 임의성은 인정하나 신빙성이 없다』로 그대로 이어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크게 주춤해진게 사실.
당시 경찰은 「선증거-후체포」「고문금지」 를 지시하는등 부산을 떨었던 것.
미국에서도 50년대 말까지는 수사기관의 불법연행·고문등 가혹행위가 잇달아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6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고문이란 말을 수사기관에서는 찾아볼수가 없게 됐다.
범인을 잡아놓고도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하면 「불법수사」를 이유로 무죄판결이 내려져 범인을 풀어주는 결과가 되기때문이다.
미국에서 고문퇴치의 주역은 법원이었다. 그중에서도 미국사법부에 진보법원시대를 연 「얼·워렌」대법원장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고문·불법감금등 위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흉기나 장물, 범행에 사용한 물건등을 법원이유죄의 증거로 삼는 것은 수사기관의 불법을 사법의 이름으로 합법화시켜주는 것이다. 이와같은 합법화는 바로 사법부가 불법을 비호·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된다.
위법수사를 근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위법수사의 의욕을 포기토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법부의 본질이 국민의 신뢰위에 있기때문에 사법의 염결성(염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6l년의 이 판결이후 하급심이 일제히 뒤따르자 주로 흑인등 빈민층을 대상으로 횡행하던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는 자취를 감추게됐다. 이른바 「위법배제의 법칙」으로 지금은 명백하게 확립된 원칙이 된 것. 이에앞서 52년 미국의 Rochin판결도 유명하다.
마약사범이 체포되자 증거를 없애기위해 마약캡슐을 삼켜버렸다. 다급해진 수사관은 기구로 토하게 한뒤 이를 증거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기구를 통한 강제수사도 고문으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던것.
재야 법조계에서는 이제 우리나라도 사법부에서 수사기관을 이끌어 갈 시대가 되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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