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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영화에 나타나는 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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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대 박종철군의 고문 치사사건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고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으며, 따라서 이미 오래 전부터 문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예술에서 주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로 등장해 왔다. 특히 고문의 사례가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는 분야가 문학과 영화-. 고문이 우리나라와 외국의 어떤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국 문학>신문학개화따라 본격 등장|『신발』등 최근의 상황다룬 작품도
『지지직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멀뚱하게 광기가 서린 눈. 이건 인간의 눈이 아니다. 어릴 때 미친 개를 본 일이 있다. 그놈의 눈알이 아마 그랬던가.』
강용준씨의 『철조망』 중 한장면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좌익분자들의 고문에 의해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고문 장면은 고전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 문학에서 고문이 본격적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일제의 질곡이 시작된 신문학 개화와 궤를 같이한다.
1930년대초에 발표된 염상섭의 『삼대』 에서는 우리의 민족주의운동에 대한 구체적 대응 억압수단이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나타난다.
선우휘의 『쓸쓸한 사람』에서는 주인공 목사를 비롯한 많은 성직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경찰에 고문을 받다가 「동료들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정신적 고문」에 의해 주인공이 끝내 변절하게 되어 파멸의 길을 걷게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인훈씨의 『광양』에는 공산주의자인 부친때문에 이유없이 무자비하게 고문당한 주인공이 끝내 혐오감을 떨쳐버리지 못한채 월북하게 된다. 그는 6·25동란중 북괴군으로 내려와 반대로 고문관의 입장에 서나 내면의 황폐 이외에 아무 것도 얻지못한채 끝내 포로가 되고자살하게된다.
김원일씨의 『암살』은 거물 정객의 암살 누명을 뒤집어쓴 한 청년이 고문끝에 목숨을 잃고 신문에는 자살로 보도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의 장편 『바람과 강』에서는 모진 고문때문에 독립군의 거처를 알려준 주인공이 반대로 희생자동포 가족에게 린치를 당하고 끝내 비열한 인간으로 삶을 살게된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또 86년에 발표된 조정래씨의 장편 『태백산맥』에서도 이데올로기때문에 임신한 피의자의 부녀자까지 고문, 끝내 유산시키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상황을 다룬 작품으로는 윤정모씨의『신발』, 임철우씨의 『직선과 독가스』, 유정룡씨의 『시인과 장딴지』등이 있다. 윤씨의 『신발』에서는 택시를 탔다가 불온한 사람으로신고된 한 중년여인이 경찰서유치장에서 막내동생뻘인 어린 전경둘에게 수모를 당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임씨의 『직선과 독가스』에서는 신문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자신이 그린 만화때문에 모처에 불려가 육체적 고통 없이 12시간만에 풀려나지만 만화가는 이후 「그네개의 하얀벽」에 관한 기억때문에 만화를그리지 못하고 파멸해간다.
유씨의 『시인과 장딴지』는 알레고리 수법으로 남녀의 역할이 서로 바뀐 사회에서 남권운동을 하던 주인공이 모처에 끌려가 성고문까지 당하며 정신적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그리고 있다. <양헌석기자>

<외국 문학>제3세계 문학에 특히 많아|나치치하의 만행이 20세기의 전형
「조지·오웰」의 소설『1984년』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권력과 통치에 대한 회의를 품었다는 것 때문에 체포되어 갖가지 고문을 당한다. 고문장면의 묘사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동물적 상태로 밀쳐놓아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말살시킨다.
고문을 당한 「윈스턴」의 몸은 작가에 의해 『육체는 갖가지로 망가지고 일그러지고 추악해져 무슨 악질에 걸린 60노인의 몸뚱이같이 보였다』고 묘사되고 있다. 고문자는 「윈스턴」에게 자기들이 가하는 고문이 고문이 아니고 치료라고 부른다. 「오리아나·팔라치」가 쓴 『남자』에서 그리스의 반정부주의자인 주인공은 전기고문등에 이어 성고문까지 당한다.
「사르트르」의 『벽』에서 주인공 「이비에타」는 스페인내란중 「프랑코」군에 잡혀 친구 「라몽그리」의 소재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당한다. 닥쳐오는 위협 앞에서 「이비에타」는 거짓 자백을 한다. 「라몽그리」가 공동묘지 안에 있다고. 그것은 채찍을 휘두르는 고문자의 위협앞에서 꾸며낸 거짓이었으나 그 거짓 자백은 실로 우연히 사실과 맞아떨어져 「라몽그리」는 공동묘지에서 체포된다.
「레마르크」의 소설『개선문』은 주인공 「라비크」가 나치에의해 전기고문·구타등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파리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을 발견, 끝없는 추적끝에 살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팔레스타인문학·남아프리카문학·남미문학등 제3세계의 문학작품에서 특히 고문이 많이 나타난다. 인종간의 분규·종교전쟁·내란과 같은 상황, 즉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적대세력 사이에 발생하는 고문들이다.
나치 치하의 게슈타포에 의한 고문은 20세기의 전형적인 것이다. 『죄와 속죄의 저편에서』에서 저자 「아메리」는 고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육체의 경계는 나 자신의 경계다. 첫 매질에서 이 세계신뢰는 무너지고만다. 육체의 경계는 사라지고 타인의 육체가 나를 덮친다.…또한 첫매질과 더불어 고문당하는 자가 명백히 의식하는 것은 그가 누구로부터도 도움받을수 없다는 것이다』「사르트르」의 희곡 『무덤없는주검』은 고문끝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상실하고 비참히 죽을 것을 우려하여 나치에 저항하다 잡혀온 5명의 레지스탕스가 가장 나이 어린 「프랑스와」를 교살한다. <임재걸 기자>

<영화>일제치하, 6·25물엔 「단골」|악랄함 속에 주인공의 인내 부각
고문은 제2차 세계대전당시 나치를 배경으로한 외국영화나 일제치하, 6·25전쟁 당시의 얘기를 그린 한국영화에선 「단골」처럼 등장하는 장면이다.
적군 또는 일본 순사에게 잡혀간 주인공이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이를 끝내 참아 견디고승리한다는 것이 이같은 영화들의 일반적인 줄거리다.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고문장면은 대부분 주인공을 매달아 놓고 몽둥이와 채찍으로 때린다든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지지는등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잔혹한 장면들. 이를 통해 적의 악랄함과 주인공의 인내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들에서 보인 고문 장면은 그 자체가 주제가 아니고 주제를 살리기 위한 배정설명 형식으로 쓰여 왔다.
고문을 본격적인 주제로 다룬 대표적 영화는 1971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됐던「이브·몽탕」주연의 『생사의 고백』(「코스타·가브라슨감독). 이 영화는 83년 6월25일 KBS 제2TV를 통해 다시 방영됐었다.
51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무대. 어느날 갑자기 공산당 비밀경찰에 의해 지하실에 끌려간 고위관리 「제라르」가 겪는 고문과정을 그렸다. 고문받는 주인공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집중적으로 묘사해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영화에서 피가 튀는 잔혹한 원시적인 고문 방법은 찾아볼수 없다. 잠을 재우지않거나 먹을 것을 안주고 전기고문정도로도 주인공은 극한적인 고통을 겪는다.
한 정치범이 날조된 재판에 의해 비인도적 고문을 받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까지의 충격적 비극과 인간 소멸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감독「가브라스」자신도 그리스에서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한인물. 그는 『Z』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정치적 음모를 고발해 왔다.
83년에 개봉됐던 영화 『1984년』에서도 한 지식인이 정치권에 의해 파멸되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 지식인은 독재권력의 손에 의해 사지가 잡아 늘려지거나 전기고문등 처절한 고통을 받는다.
이같은 육체적 고문만이 고문이 아니다. 정신적 고문 또한 그 이상의 고통을 준다.
지난해 TV에서 방영됐던 영화『소피의 선택』이 그 좋은예. 이 영화에서 나치에 끌려간폴란드 여인은 나이어린 딸과 아들 가운데 『한명만 살려주겠다』는「죽음의 선택」을 강요당한다. 여인은 절박한 상황속에서 결국 나이어린 아들을 택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여인은 이때의 충격과 죄책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정신상태가 된다.
나치 치하나 일제, 6·25당시를 배경으로한 영화에 나타나는 고문은 고문을 하는 쪽과 받는 쪽이 분명히 적과 아로 대립된 가운데 펼쳐진다. 같은 국가, 같은 체제 아래서 벌어지는고문은 영화속에서도 찾아보기어렵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줄수 없기 때문이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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