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깊은 숲속 새들의 목욕탕, 누가 파 놓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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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딱따구리의 선물』(이우만 지음, 보리, 44쪽, 1만2000원)은 생태 그림책이다. 작가가 자신의 집 인근 서울 화곡동 봉제산에서 직접 관찰한 새들의 생태를 색연필로 한 선, 한 선, 세밀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은 청딱따구리다.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지난해 봄, 아까시나무에 구멍을 뚫던 청딱따구리가 물을 찾아 골짜기 아래 바위틈으로 날아갔다. 고인 물로 목을 축인 청딱따구리는 마른 낙엽을 치우고 젖은 흙을 호미질하듯 파헤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웅덩이에 들어가 깃털에 물을 적셔 더운 몸을 식히고 부리에 물을 묻혀 날개를 씻었다.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친 뒤 나무에 올라가 물기를 털어내는 광경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더 신기한 모습은 다음 장면부터다. 청딱따구리가 만들어놓은 물웅덩이에 박새와 뱁새·곤줄박이·울새 등이 연이어 날아들어 목욕을 하고 갔다. 책 제목의 ‘선물’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어떤 편의가 누군가의 선물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들여다볼수록 경이로운 생명의 세계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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