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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이화여고 대자보 쓴 나수빈 학생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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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은 시민인가요?”


지난 3일 서울 이화여고에 이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 글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언급하며 “대선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청소년들에게도 이 일은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라면서 질문의 계기가 ‘최순실 게이트’임을 밝혔다.

대자보는 “입시라는 큰 과제 앞에 선 우리에게 이러한 비선실세니, 권력형 비리니 하는 것들은 다른 세계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면서 “우리는 시민이라는 사실”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또 “입시라는 거대한 방에 갇혀 12년, 아니 19년을 나라가 원하는 대로 자라왔다. 그러나 갇혀있다고 해서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내용으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강조한다.

이는 이 학교 3학년 나수빈 학생과 김민주 학생이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학생의 날(11월 3일)을 맞이해 붙인 대자보다. 나수빈 학생이 초안을 쓰고 김민주 학생이 글을 다듬어 정리하는 과정을 도왔다. 나수빈 학생은 올해 초 일본군 위안부 협상 무효 시위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고, 대통령님도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절대 역사를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느 고3들과 다름없이 수험생으로서 입시를 준비하는 나수빈 학생에게 대자보를 쓰고 붙이게 된 과정을 들었다. 늦은 시간 독서실에서 잠깐 시간을 내 전화 통화에 응한 나수빈 학생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주권의식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자보를 썼다”고 말했다.

- 대자보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제(2일) 대자보를 쓰자는 생각을 했어요. 학생의 날이기도 하고요. 주권의식을 가지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저희 학교가 의사표현을 존중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대자보를 붙여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최순실 이슈와 관련해서 비판이나 패러디가 많이 보이는데 대자보에서는 ‘우리는 시민’이라는 점만 강조한 이유가 있는지.
“저는 정치적인 견해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든 개인적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부분에 강하게 비판을 했을 때,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판이나 비난, 조롱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핵심만 남겼어요.”

- 대자보와 관련해 학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학생들이 이 내용(최순실 게이트)에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의 날을 맞아 복도 게시판에 비판하는 메모도 많이 붙었고요. 대자보 잘 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 선생님들이 제지하거나 불편해하지는 않았나요.
“박수로 응원해준 선생님도 계셨고, 직접 격려도 많이 받았어요. 오히려 기특하다며 좋아해주셨어요.”

이화여고 대자보 전문

이화인의 오늘을 묻습니다. 오늘, 당신은 시민인가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는 다르게, 요즈음 언론은 매우 뜨겁습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특근 비리, ‘비선실세 논란’ 때문입니다. 박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사실은 우리가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민간인 최순실씨와 그 측근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그들은 국민의 손으로 선사한 권력을 이용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심지어는 자녀의 대입에도 그 권력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역행을 의미합니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알고 보니 누군가의 꼭두각시였다니요. 대선투표를 할 수 없었던 청소년들에게도 이 일은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최순실씨와 그 일행들은 차례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이는 형벌이나 녹화된 대국민 사과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화인 여러분, 입시란 큰 과제 앞에 선 우리에게 이러한 비선실세니, 권력형 비리니 하는 것들은 다른 세계의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른 세계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시라는 큰 벽이 우리의 모든 자유를 옭아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잊으시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화에 오면, 우리는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이화의 여러 독립투사들의 생애를 배웁니다. 그것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나 그로 인한 자부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고, 분노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시민의식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행동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시민입니다. 약간은 낯선 말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너희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시민이야’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입시라는 거대한 방 안에 갇혀 12년, 아니 19년을 나라가 원하는 대로 자라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갇혀있다고 해서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학생의 날입니다. 미숙하다는 핑계로 배제되는 청소년들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억압과 핍박에서도, 우리는 시민입니다. 그렇기에 말할 권리 또한 있습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14년 4월16일 수백 명의 시민을 떠나보냈습니다. 대다수는 우리와 같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그에 의거한 판단으로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이화인 여러분, 여러분의 학창시절에 꽃과 같은 아름다운 기억만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칠흑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헛된 망상으로 피우는 꽃이라면 결코 아름다울 수 없겠지요. 국가라는 공동체가 마주한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지 마세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국가입니다. 더럽다고 해서 눈을 돌려버리면, 정치는 더욱 더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손에 쥐고, 내 나라, 내 사회에 잠시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 누구의 탄압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모두는 국민이고 주인입니다. 주인으로서 나의 국가를 더럽히는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작은 관심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오늘, 당신은 시민인가요?

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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