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 안에 있다” 유영국 색면추상을 다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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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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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캔버스에 유채, 129X129㎝, 196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붉디붉은 산(山)이 금강석처럼 반짝인다. 산은 산이되, 산을 꿰뚫은 삼각의 강건함이 보는 이 마음에 육박한다. 광휘에 찬 색면(色面)은 뜨거움을 버린 건조함으로 오히려 숭고하다.

국립현대미술관서 탄생 100주년전
형식·타협 거부한 뚝심의 화가
산을 닮아 순수한 초월적 정신세계
녹색·주황의 빛나는 삼각형에 투영
활동 시대별 분류, 100여 점 전시

화가 유영국(1916~2002)은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했다. 그가 좋아했던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한마디가 겹쳐진다. “우리는 외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비극을 극복하고 일어서서 모든 것 속에 있는 평온함을 의식적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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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작품세계는 그룹 활동을 접고 개인작업에 몰두한 1960년대 중엽부터 꽃핀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과묵과 금욕, 고집과 뚝심의 작가 유영국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거목(巨木)으로 불린다. 동년배인 김환기·박수근·이중섭·장욱진과 비교해 그는 신화가 없는 화가였다. 식민지의 그늘에서 천재 또는 기인으로 튀어오르거나 일그러지지 않았다. 형식과 타협을 거부하고 스스로 택한 고립과 은둔 속에 오로지 “그림 앞에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았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4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막을 올리는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은 전 생애에 걸친 작품 100여 점과 자료 50여 점으로 ‘유영국 회화 세계의 재발견’을 시도한다.

4개 전시실은 유영국의 작품을 시대별로 풀어놓았다. ‘1916~43 도쿄 모던, 1943~59 추상을 향하여’ ‘1960~64 장엄한 자연과의 만남’ ‘1965~70 조형실험’ ‘1970~90년대 자연과 함께’다.

초기작에 ‘노을’ ‘계곡’ 등 제목을 붙이던 화가는 점차 ‘산’ 또는 ‘작품(Work)’으로 압축해 구체적 형상의 흔적을 제거하거나 생략하며 만물의 동등성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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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캔버스에 유채, 130X130㎝, 1967.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내 그림은 주로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일 게다. (…) 무성한 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잔디밭에 쏟아지는 광선은 참 깨끗하고 생기를 주는 듯 아름답다”는 유영국의 발언은 이인범 상명대 교수의 작품 분석과 통한다. “울진의 산과 계곡, 바다의 살아있는 자연체험이라는 사실을 그는 그렇게 고백, (…) 근대화 과정에서 격동하며 뒤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 대지와 자연에서 유영국은 짙푸른 깊이의 녹색을 위로하는 주황의 광휘로 빛나는 삼각형들을 그 근원적 형상으로 삼아, (…) 추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일으켜 세우고 있다.”

화가는 오전 8시에 화실로 들어가 오후 6시에 작업을 마무리하는 ‘그림 노동자’의 삶을 견지했다. 그의 일상을 지켜본 소설가 강석경씨는 “대패질하듯 그 흔적을 깎아서 ‘좋은 화가’로만 남았을 뿐” 그 어떤 장식의 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의 장남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선친은 통 말이 없는 분이었다. 유언을 여쭸더니 ‘없다’ 큰 소리 한마디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고 싶다’는 말씀은 자주 하셨다”고 회고했다.

제 그림 속 산을 닮아 순수하고 초월적인 정신을 열어젖히다 간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 희귀한 정신으로 남았다.

“회화란 모름지기 자기를 내세워야 한다. 나의 이미지의 출처는 자연과 생활 주변이다. 나는 예순 살까지는 기초를 좀 해 보고, 이후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했던 유영국. 그는 자신이 그렇게 바랐던 절대 자유를 찾아 붓을 놓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02-2022-0600.

◆유영국

1916년 경북(당시 강원도) 울진 생. 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 뒤 하세가와 사부로(長谷川三郞) 등 당대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들과 전위 미술운동에 뛰어듦. 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한국인으로 협회상을 첫 수상.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사진수업을 받고 전위사진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창작활동. 43년 귀국한 뒤엔 어업과 양조업에 종사. 10년 공백기 뒤 나이 마흔에 화업으로 복귀, 신사실파·모던아트협회·현대작가초대전·신상회(新象會) 등을 이끎. 64년 신문회관에서 연 첫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은 뒤 화업에 매진하다 2002년 타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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