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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마법으로 연 '멀티버스'의 세계 MCU, 또다시 진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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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의 라이벌은 여전히 마블일까. ‘닥터 스트레인지’(원제 Doctor Strange, 10월 26일 개봉, 스콧 데릭슨 감독)는 여러 히어로들이 중세 천장 벽화처럼 화려하게 어우러졌던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4월 27일 개봉, 앤서니 루소·조 루소 감독, 이하 ‘시빌 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환상적인 비주얼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매력은, 관객을 ‘마블’이란 마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원작 만화와 비교해 본 '닥터 스트레인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며 궁금해졌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초월적 능력과 그가 넘나드는 ‘멀티버스(Multiverse)’의 풍경은 앞서 원작 만화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수퍼 히어로 전문가인 이규원 그래픽 노블 번역가와 함께 궁금증을 풀어 보자.

영화 ‘셜록 홈즈’ 시리즈(2009~)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영국 TV 드라마 ‘셜록’ 시리즈(2010~, BBC)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명탐정 셜록 홈즈를 연기한 두 배우가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각각 최강의 ‘과학 히어로’와 ‘마법 히어로’로 만났다. 셜록 홈즈와 닥터 스트레인지의 인연은 2006년 출간된 그래픽 노블 『닥터 스트레인지:서약』에서 시작된다. 당시 미국 사회의 큰 이슈였던 의료 보험 문제를 풍자하며, 닥터 스트레인지와 크리스틴 팔머의 만남과 모험을 다룬다. 만화는 가슴에 총을 맞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팔머의 병원에서 수술받고 살아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술 이후 함께 모험을 떠난 두 사람은 서로를 ‘셜록’과 ‘왓슨’이라 부른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수술 장면은 이 그래픽 노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만화를 그대로 재현한 명장면
원작 만화에서 가져온 또 다른 대표적 이미지는 노란 마법과 초록 마법. 영화 속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과 그 제자들은 노란 마법을 사용하는데, 1960년대 원작 만화에서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노란빛의 마법을, 그의 라이벌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포)는 초록빛의 마법을 구사하며 대결했다. ‘초록과 노랑의 대결을 다룬다’는 설정은 DC 수퍼 히어로 그린 랜턴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DC 영화 ‘그린 랜턴:반지의 선택’(2011, 마틴 캠벨 감독)은 물론, 인챈트리스(카라 델레바인)와 엘 디아블로(제이 헤르난데즈) 등 마법 캐릭터를 선보인 ‘수어사이드 스쿼드’(8월 3일 개봉,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역시 혹평에 시달렸다. 반면, 초록빛·노란빛·반지·마법 등 DC가 실패했던 아이템들을 모두 모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오히려 MCU의 미래에 ‘그린라이트’를 밝혔다.

마블 초창기 3대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스탠 리와 잭 커비, 스티브 딧코를 꼽는다. 딧코의 대표작은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1960년대 딧코가 그린 만화 속 장면들을, 마치 헌정하듯 그대로 가져다 썼다. 산꼭대기에 열리는 포털, 초자연적 세계를 여행하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영혼이 경이와 깨달음에 사로잡히는 장면, 도르마무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는 ‘다크 디멘션’의 풍경 등은 딧코의 만화 패널(Panel·만화의 그림 한 칸)을 최대한 살려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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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한 개념 '멀티버스'
다만 ‘멀티버스’라는 용어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여지가 있다. 원작 만화의 개념을 정리하면, 어떤 만화 주인공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유니버스(Universe)’라 부른다. 그와 동시에 차원 너머에 동일 인물이 살고 있는 또 다른 대체 세계가 존재한다. 그 대체 세계 하나하나가 유니버스가 되고, 수많은 유니버스를 구분하기 위해 각각 숫자를 붙인다. 보통 마블의 중심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는 ‘지구-616’이다. 그리고 다른 대체 세계에는 ‘지구-X’ ‘지구-1610’ 같은 이름이 붙는다. 마블 영화 속 세계관은 ‘지구-199999’라 명명된다. 이렇게 세계를 구분해 두면, 작가들은 마음에 드는 세계를 골라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고, 자기 입맛에 맞는 세계를 새로 만들 수 있으며, 기존 세계의 이야기를 확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유니버스를 모두 합친 것이 멀티버스다. 멀티버스 간에도 교류가 있는데, 가령 ‘어벤져스’ 시리즈(2012~)에서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헐크가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1977~1982, CBS)에서 루 페리그노가 연기한 헐크와 만나거나, ‘시빌 워’에 등장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3부작(2002~2007, 샘 레이미 감독)에 나오는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과 만나 친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무기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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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테이션 망토 닥터 스트레인지의 분신과도 같은 레비테이션 망토. 원작 만화에서 처음에는 파란색으로 등장했다가 이후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도르마무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에인션트 원이 그 공을 치하해 선물로 새로운 망토를 하사한 것. 원래 아이언맨을 탄생시킨 만화가는 돈 헥이었지만, 빨간색과 금색이 결합된 갑옷을 디자인한 인물은 딧코였다. ‘스파이더맨·닥터 스트레인지·아이언맨 모두 붉은색을 넣어야 캐릭터가 돋보인다’고 생각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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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링 링 영화용으로 만들어진 반지다. 원작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목걸이 ‘아가모토의 눈’ 테두리가 커지면서 포털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원작에 슬링 링은 없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손 모양이 독특한 것만은 유명했다. 원작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을 쓸 때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쏠 때와 비슷한 모양으로 중지와 약지를 접고 손을 휘젓는다. 그래서인지 슬링 링도 손가락 두 개를 끼우도록 디자인됐다. 다만 검지와 중지에 끼운다는 것이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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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디멘션 영화에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로 등장하는 ‘샴발라(Shamballa)’는 1986년 발간된 그래픽 노블 『인투 샴발라』의 제목에서 따왔다. 이 책에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하지만 1960년대 원작 만화에서 모르도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사는 집인 ‘생텀 생토럼’을 통째로 ‘이름 없는 어느 차원’에 영원히 가두는 마법을 사용한다. 이 때 생텀이 공간 이동한 차원은 거대한 유리 구체 같았는데, 아마 이것이 영화 속 미러 디멘션의 기원인 듯하다.

우주와 정신세계까지 뻗어 나간 MCU
딧코는 원작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모험을 펼치는 무대를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드(Id), 자아, 초자아 등을 형상화한 초의식의 세계로 그렸다. 가령 닥터 스트레인지가 가장 처음 만난 적인 ‘나이트메어’는 꿈의 영역을 지배하는 군주다. 영화에도 이러한 설정이 반영됐다. 그렇기 때문에 악당 도르마무가 사는 다크 디멘션은 단순한 지옥이나 악의 세계와는 다르다. 이것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인간의 의식과 이어진 세계이기도 하다. 꿈·사랑·분노·어둠 등 여러 감정들이 형상화된 다양한 디멘션들의 세계. 그러니 이 세계는 정확히 말하면 멀티버스가 아니라 ‘미스틱 디멘션(Mystic Dimension)의 세계’라 부르는 것이 맞다. 원작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넘나드는 세계는 바로 이 미스틱 디멘션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법을 사용할 때 등장하는 티베트 불교의 표식 카라차크라(Kalachakra·시간의 바퀴)가 인간 정신세계 구조를 의미하듯, ‘닥터 스트레인지’는 결국 이 미스틱 디멘션을 넘나드는 정신세계의 모험을 다룬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으로 1970년대 이후 로이 토마스, 짐 스탈린 같은 작가들이 만든 ‘코스믹 마블’이 있다. 코스믹 마블은 광활한 우주 제국들의 세계와 초우주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제임스 건 감독)를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오늘날 마블 세계는 네개의 축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등의 현실 지구 세계, 토르의 신화 세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우주 세계, 닥터 스트레인지의 정신세계인 미스틱 디멘션’으로 완벽하게 그 세계관이 완성된다. 그러니 ‘닥터 스트레인지’는 MCU를 떠받드는 네 개의 기둥 중 마지막 기둥을 완성하는 영화라 보면 된다. 이제 MCU는 튼튼한 네 개의 기둥 위에서 탄탄한 하나의 유니버스를 갖게 되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유니버스로 그리고 유니버스와 유니버스가 연결되는 멀티버스의 이야기를 펼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위 ‘DC 확장 유니버스’라고 부르는 DC 수퍼 히어로 영화의 세계관은 아직 ‘메트로폴리스’와 ‘고담시’ 외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그러니 DC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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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까지 아우르는 마블의 세계관
세계관을 넓히는 문제에 있어, 마블의 세계관은 마블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가령 ‘트랜스포머’ 시리즈(2007~, 마이클 베이 감독) ‘지.아이.조’ 시리즈(2009~) 같은 영화들이 MCU에 속한다고 할 순 없지만, 실제로 이 영화들의 원작이 마블 코믹스 만화들이다. 마블 코믹스 작가들은 두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과 세계관을 창조했다. ‘스타워즈’ 시리즈(1977~) 역시 마블 코믹스를 통해 발전한 대표적인 영화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코난:바바리안’(1982, 존 밀리어스 감독)도 1970년대 마블 코믹스가 발전시킨 대표작이다. 심지어 ‘코난:바바리안’의 배경인 고대 소드 앤 소서리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사용하는 고대 마법의 뿌리로 등장한다. 그 대표적 증거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둠의 마법서 ‘카글리오스트로의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열어젖힌 멀티버스의 포털은, 마블 영화뿐 아니라 자신들이 영향을 미친 모든 영화로 향하고 있다. 팬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영화 속 세계들이 연결되는 미래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 속 MCU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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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블 로고
만화책 페이지가 차르르 넘어가던 기존 마블 영화의 오프닝 로고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기점으로 새 단장됐다. 기존 마블 영웅들의 모습이 빠르게 몽타주로 펼쳐진 뒤, 화면 가득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의 타이틀이 나타난다. ‘마블’이란 글씨만 유독 강조했던 기존 로고와는 사뭇 다르다. 관객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겠지만, 마블 영화의 역사를 예고편처럼 짧은 영상에 요약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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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부상 환자는 워 머신이 아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병원 직원이 수술한 환자에 관해 나누는 대화 중 ‘실험용 수트를 입었다가 척추가 부러진 35세 공군 대령’이 짧게 언급된다. 이 대목에서 여러 관객이 ‘시빌 워’(사진)에서 치명적인 허리 손상을 입은 워 머신(돈 치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MCU에서 워 머신의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해당 환자와 거리가 멀다. 아마 이 장면의 시간대는 ‘시빌 워’ 이전으로, ‘아이언맨2’(2010, 존 파브로 감독) 무렵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언맨2’에 군수 회사 해머가 군인들을 상대로 군사용 수트를 테스트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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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인피니티 스톤
닥터 스트레인지의 목걸이 아가모토의 눈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리는 힘을 가진 ‘타임 스톤’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MCU에 우주 악당 타노스(조쉬 브롤린)가 노리는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 중 다섯 개(스페이스·마인드·파워·리얼리티·타임)가 공개된 셈이다. 남은 건 아직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소울 스톤’이다. 일부 팬들은 "‘토르’ 시리즈(2011~)에 등장하는 문지기 헤임달(이드리스 엘바)의 눈이 영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소울 스톤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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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라그나로크'를 위한 포석
닥터 스트레인지와 토르가 만나는 쿠키 영상은 2017년 개봉할 ‘토르:라그나로크’(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이하 ‘토르3’)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출연을 못박았다. ‘토르3’에는 두 영웅이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추정된다. 배우 겸 작가 데일리 피어슨이 지난 8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토르3’의 촬영장 사진을 보면, 토르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쪽지 속 주소는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의 본부인 생텀 생토럼(미국 뉴욕 블리커가 177A)이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이규원 그래픽 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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