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눈치만 본 지도부 총사퇴” 집단행동 나선 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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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후폭풍이 새누리당을 덮쳤다. 31일 새누리당에선 129명의 소속 의원 중 41명이 이정현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회의에 동참했다. 또 당 대변인과 여의도연구원 원장·홍보본부장이 ‘당 쇄신’을 외치며 당직을 사퇴했다. 이 대표를 정점으로 한 친박계 지도부의 리더십이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다.

김무성·나경원·정병국·심재철 등
“재창당 수준 조치 필요” 50명 서명
이학재 등 일부 친박 의원도 참여
이정현 “배와 끝까지 가겠다” 거부
대변인·홍보본부장 등 당직 줄사퇴

이날 오전 7시30분 국회 의원회관 4층 간담회장에 모인 의원들은 한 시간 동안의 회의를 마친 뒤 ▶최순실 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 협조 ▶거국(擧國)내각의 조속한 구성 ▶당 지도부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본지 10월 31일자 3면>

김무성 전 대표와 심재철 국회부의장, 정병국·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대부분 비박계였지만 이학재·경대수·유의동·성일종 의원 등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참여했다.

김 전 대표는 “당 지도부의 인식이 너무 안이했다”며 “국정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려면 당을 다시 만드는 수준의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청와대가 리더십을 회복하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당의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선 지도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황영철 의원은 의원 50명의 서명을 받아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당 지도부의 퇴진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이들 외에 하태경 의원 등 21명의 의원은 별도로 “청와대 눈치만 본 당 지도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 총사퇴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전 모임을 주도한 김용태 의원 측은 “회동에 참석한 의원과 성명서에 동참한 의원들을 합하면 당 전체 의원 중 절반 정도인 60여 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움직임과 달리 오전 9시부터는 새누리당 당사 6층에서 이 대표 주재로 최고위원회가 열렸다. 어두운 분위기에서 이 대표는 모두발언도 하지 않았다. 유일한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의원은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는 의원회관 모임에 참석한 뒤 최고위원회의에 나왔다. 이 대표는 한 시간 동안의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티타임 간담회를 더 하고, 낮 12시15분쯤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 앞에 선 이 대표의 눈은 충혈됐고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와 연판장이 도는데.
“듣고 있다.”
사퇴할 건가.
“… 어렵고 힘들 때 책임감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지도부 중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은 없다. 어려울 때 그만두고 물러나고 도망가는 건 가장 쉬운 선택이다. 좋을 때든 나쁠 때든 배의 선장처럼 책임을 지고 하겠다는 신념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는 일단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최고위원들에게도 “집권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사태를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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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자 오신환 홍보본부장과 김현아 대변인,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이 곧바로 당직을 사퇴했다. 김 대변인은 “당과 정부에 쓴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사퇴하겠다”고 밝혔고, 김 원장은 “새누리당만의 쇄신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도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자리에 연연 않는다. 언제든지 물러날 각오가 돼 있다”는 문자를 돌렸다. 버티기에 돌입한 이 대표 중심의 친박계 지도부와 사퇴 압박에 나선 비박계 중진 등의 갈등은 향후 더 격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친박계는 “비박계가 최순실 정국을 틈타 당 주도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보고 있고, 비박계는 “이 대표로는 새누리당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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