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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끝내 마주보지 못한 이란 샴쌍둥이 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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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거울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소원이에요."

이달 초 29세로 힘들었던 생을 마감한 이란의 라단.랄레 비자니 자매.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로 태어나 그토록 원했던 분리수술을 받던 중 숨져 장례식에서나마 비로소 둘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민사랑.지혜 자매는 성공적으로 분리수술을 마쳐 회복 중이다.

샴쌍둥이가 태어나는 과정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수정 후 13일쯤 뒤 정확히 양분될 경우 일란성 쌍둥이로 출생하지만 분리가 완전하지 않을 경우 샴쌍둥이로 태어난다는 수준이다.

서울대병원 전종관(산부인과)박사는 "워낙 희귀하게 나타나는 경우라서 샴쌍둥이의 정확한 발생원인, 특히 유전적인 영향인지, 환경오염 등 공해에 의한 것인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때로는 실험대상으로, 때로는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돼 왔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머리가 둘인 쌍둥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볼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답은 쌍둥이의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쪽 머리에서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으로 치고, 다른 쪽 머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두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잔인한 내용이지만 샴쌍둥이를 한명 또는 둘로 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예부터 여전했음을 말해준다.

외형적으로 하나지만 각각의 뇌를 갖고 있는 샴쌍둥이는 늘 같은 상황과 같은 자극에 몰려야 하는 운명이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약리학)교수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배경에서 육체적으로 붙어다녀야 하는 샴쌍둥이의 뇌 구조는 거의 동일할 것"이라며 "서로의 생각을 알기는 힘들어도 동일한 자극에 유사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붙어 있는 부분을 통해 아드레날린.스테로이드 호르몬.엔돌핀 등 감정으로 연결되는 호르몬을 공유하면서 자극에 대한 반응이 거의 유사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쌍둥이를 이용한 뇌과학 연구 결과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UCLA 의대의 폴 톰슨 교수팀은 일란성과 이란성 쌍둥이 각각 10쌍의 뇌 회백질 밀도를 3차원 영상으로 분석했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곳으로, 인간의 언어능력 등 모든 인지능력을 관장하는 곳이다. 밀도의 분포에 따라 지능지수.언어 능력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측정 결과 일란성 쌍둥이의 뇌밀도가 70~90%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같은 부분이 70% 이하였다.

미네소타대의 쌍둥이연구소에서는 출생 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1백쌍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성격.심리.혈압 등 각종 검사를 벌인 결과, 일란성 쌍둥이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한쪽이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다른 한쪽이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일란성은 50%인 반면 이란성은 10%에 그쳤다.

소련은 허리 아래로 붙어 있는 마샤와 다샤라는 샴쌍둥이 자매를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 벌였다. 한쪽을 바늘로 자극하면 다른 쪽에서 아픔을 느끼는지, 한쪽을 얼음으로 싸면 나머지 한쪽의 체온도 떨어지는지, 오랜 시간 한쪽에만 우유를 주는 경우 주지 않는 쪽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등이다.

그러나 실제 성격까지 동일한 샴쌍둥이는 흔하지 않았다. 마샤가 호전적이라면 다샤는 부드러운 편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41세 샴쌍둥이 자매 레바와 로리 세펄은 뇌의 전두엽 부분이 붙어있다. 컨트리송 가수인 레바가 조용하고 잘 참는 성격이라면 로리는 약간 거칠면서도 따뜻한 모성애를 가졌다.

이에 대해 뇌과학연구원 이건호 연구소장은 "서로가 부담이 되는 극한상황에서 각자의 존재가치를 알리기 위해 이질성을 강조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1996년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했던 한양대 구리병원 백홍규(외과)박사는 "샴쌍둥이처럼 평생 붙어 있을 경우 생존경쟁을 통해 우성과 열성으로 나뉠 수 있다"고 말했다.

샴쌍둥이는 분리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사망까지 함께 한다는 슬픈 운명을 지닌다. 샴쌍둥이의 원조격인 태국 출신의 창과 엥 형제는 1874년 같은 날 63세로 생을 마감했다.

창이 먼저 숨을 거두자 엥도 3시간 만에 운명을 같이 했다. 혈액순환이 멈춰버린 형제의 몸 속으로 혈액이 빠져나가면서 결국 자신도 쇼크를 일으킨 것이다.

등 아래와 엉덩이가 붙은 채 34년을 함께 산 영국의 메리.엘리자 헐스트 자매의 경우, 한명이 숨지자 나머지 한명은 그를 구하기 위해 수술을 시도하려는 의사에게 "올 때도 같이 왔으니 갈 때도 같이 가겠다"고 말한 뒤 허혈성 쇼크로 곧 숨을 거뒀다.

한국쌍둥이연구센터 허윤미(한성대 겸임교수)연구책임자는 "일란성 쌍둥이는 의존도가 매우 높아 한쪽이 사망할 경우 상실감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며 "샴쌍둥이의 경우 허탈감은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영화 '트윈 폴스 아이다호'에서 한 의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반으로 가르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을 잃는다. 하나라도 살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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