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과 변화의 조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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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내년에도 경제 운용이 순조로울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새해 경제운용 계획이 8%의 실질성장과 3백90억 달러의 수출, 그리고 50억 달러의 경상수지흑자를 내다보고 있는데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올해의 성공적 실적을 토대로 한다면 이 같은 정부의 낙관은 상당한 근거를 가진 듯 하다.
올해의 실질성장률 12% 수준이 당초 계획 7%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 외에도 이 고율 성장이 주로 수출호조와 제조업 부문의 활성화가 주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 연구원 등 주요연구 기관들이 내년 경제의 지속성장을 쉽게 예측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발표된 정부계획 목표들은 오히려 이들 연구기관 예측보다 더 신중을 기한 측면조차 없지 않다. 8%의 성장계획이 그렇고 50억 달러의 경상흑자 계획이 또한 그렇다.
물론 이런 총량 계획들은 투자율이 올해와 같은 30%수준을 내년에도 유지하고, 동시에 국내 저축률이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을 만큼 높아진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올해 국내 저축률이 32%를 넘어설 전망이고 사상 처음으로 투자율을 웃돌 것이 확실한 만큼 특별한 저축 저해 요인이 생기지 않는 한 내년에도 국내투자를 뒷받침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총량지표와 관련된 여러 조건들이 낙관적인데도 불구하고 새해 경제는 여전히 많은 변화의 요인들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첫째는 올해의 성공을 뒷받침한 중요한 해외요인들의 변화 가능성이다. 이른바 3 저의 주축을 이루었던 국제통화와 원유가 구조가 중요한 전기에 접어들고 있음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원유 가는 이미 OPEC의 감산정책이 굳어졌고 그로 인해 국제시세가 속등세로 돌아섰다.
이로 인해 정부가 예상한 내년 중 평균 도입가 배럴 당 15달러는 의외로 빨리 비 현실화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가 반등이 국제통화 구조의 소강상태를 깨뜨린다면 어떤 부가 측의 변화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원 화조차 끈질긴 절상 압력아래 놓여있어 내년 중 상당 폭의 인하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외적 조건의 변화가능성은 당장의 수출계획이나 국제수지계획에 큰 영향을 미칠 뿐 만 아니라 국내투자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민간투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경제적·정치적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3저의 좋은 여건 아래 가능했던 고율 투자, 특히 수출산업에 집중되었던 민간투자가 내년에도 지속되기 위해서는 올해보다 더 많은 전제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올해 경상흑자의 기반이 되었던 대미 무역흑자도 내년에는 대폭 감축이 예상되는 반면 대일 적자는 쉽사리 해결 또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원유도입 부담까지 다시 늘어난다면 내년 경상흑자 50억 달러는 의외로 어려운 정책목표가 될지 모른다.
이런 외적 조건들은 결국 내년 경제운용의 특별한 탄력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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