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진룡 "내 후임 장·차관, 결재하다 모르면 차은택에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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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문체부선 무슨 일이

2014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 사표를 낸 배경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말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앞서 말 안 듣는 공무원 정지작업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을 촉발한 두 재단 설립 허가의 주무부처다. 문체부에는 2014년 하반기부터 칼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유진룡 전 장관이 그만둔 게 신호탄이었다. 유 전 장관과 당시 퇴직한 1급 공무원 최모씨를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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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유진룡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정부와 맞지 않는 게 여러 개 있었고 그 상황에서 내가 일을 하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한 차은택씨가 문체부에 영향력을 미쳤나.
“내가 장관직을 그만둔 뒤로 차씨가 문체부에서 전권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2014년 8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차씨는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위촉). 직원들 말로는 거의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더라. 장·차관이 결재하다 모르면 차씨에게 전화해 물어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장관일 때는 차씨의 존재를 몰랐나.
“있을 때는 몰랐다. 바퀴벌레들이 다 구멍 속에 들어가 있어서, 내가 나가자마자 바퀴벌레들이 쫙 출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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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도 없었나.
“돌이켜 생각하면 2013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건 등에 대한 대한승마협회의 감사보고 때인 듯하다. 승마협회는 아주 작은 조직이고 영향력도 미미하다. 굳이 청와대에서 승마협회를 지적해 조사하라는 게 이상했다. 진재수 당시 체육정책과장이 조사해 보니 승마협회의 ‘최순실파’와 ‘반대파’ 모두 비리가 많아 그대로 보고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태강 국장과 진 과장을 좌천시키더니 결국 잘랐다.”
이후에도 인사로 조직을 재정비했나.
“내가 나간 다음 김기춘 비서실장이 유능한 1급 공무원 6명을 골라서 잘랐다. 이 ‘문체부 학살’이 다른 공무원 조직에도 소문나면서 학습효과가 생겼다. 그런 식으로 조직을 정비한 거 아니겠느냐. 청와대 말을 안 들을 것 같은 사람들을 자르면 이후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부터는 재단 등록이 하루 만에 이뤄지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거다.”

◆문체부 전 1급 공무원 최씨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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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만두게 됐나.
“2014년 8월 국정감사 준비를 위해 새벽까지 일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김희범 전 1차관이 ‘조직을 위해 나가 달라’고 했다.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
그만두기 전까지 외압이 있었나.
“ 유 전 장관이 물러나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유 전 장관과의 친분과 정치성향을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또 출장을 갔는데 갑자기 공직윤리위원회에서 근무 이탈 경위를 파악하는 등 내보낼 사유를 찾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 전 장관은 어떻게 물러나게 됐나.
“진보 성향 문화계 인사 지원책을 놓고 김기춘 실장과 입장 차이가 있었다. 또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유 전 장관이 정부에 쓴소리를 한 것을 계기로 틀어지게 됐다고 들었다.”
당시 문체부 상황은 어떠했나.
“유 전 장관이 물러난 뒤 갑자기 정부 상징체계와 국가 브랜드 사업이 추진되고, 진행 중이었던 ‘코리아체조’가 ‘늘품체조’로 바뀌는 등 변화가 많았다. 나중에 보니 모두 차씨가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 차씨가 대통령 양아들이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로 힘이 셌다.”
또 다른 변화는 어떤 게 있었나.
“문체부 조직체계가 달라졌다. 원래 1차관 업무였던 관광·스포츠·해외홍보가 2차관 소관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문체부의 주요 업무와 예산을 모두 김종 2차관이 맡아 처리하는 구조가 됐다. 또 체육국이 체육실로 승격되면서 규모가 두 배 가까이 커졌다.”
김종 2차관은 어떻게 임명된 건가.
“임명 당시도 뜬금없는 인사라 말이 많았다. 과거 야구위원회를 통해 김기춘 실장과 알게 됐고 그 친분으로 차관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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