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20% 줄여라” 쇼크…화장품·면세점 주가 7~8%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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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관광객(유커)들로 25일 서울 명동이 북적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을 찾는 유커를 20% 이상 줄이라는 지침을 내려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날 유커 수혜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중국 정부가 한국으로 가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수를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이라고 한 지침(본지 10월 25일자 10면)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대신 필리핀 보내라” 지시도
‘매출 60% 중국인’ 면세점 비상
단체 관광객 많은 호텔도 타격

중국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25일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몇몇 지방 성(省) 정부 여유국에서 일선 여행사를 소집해 한국행 유커를 줄이라는 방침을 통보했다”며 “일부 지역에선 한국으로 가는 유커를 줄이고 그만큼 필리핀으로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최근까지 남중국해 분쟁으로 유커 제한 조치를 당했으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방중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급개선됐다.

메르스 여파에서 겨우 벗어나 회복세를 이어 가던 관광업계는 유커 제한이 현실화되면 면세점·숙박 업계부터 화장품 같은 제조업체까지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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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화장품·면세점·여행 등 중국 수혜주는 급락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5일 오전 한때 전날보다 15%가량 떨어진 33만1000원까지 급락하다 전일보다 7.12% 내린 34만5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LG생활건강도 전날 대비 8.34% 하락해 84만6000원을 기록했다. 호텔신라(-6.94%), 하나투어(-8.04%) 등 면세와 관광주 역시 하락세를 보였다.

가장 큰 타격은 중국 단체 관광객에게 미칠 것으로 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598만4000명 가운데 단체 관광객은 41%(245만3000명)다. 단체 관광객은 대체로 2~3개월 전에 예약하기 때문에 연말께 국내에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선자(沈佳)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체 관광객이 연간 20% 줄면 관련 산업에서 최소 2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한국 관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질 경우 개별 관광객도 영향을 받아 경제적 손실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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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상인 곳은 면세점이다. 지난해 롯데·신라·SK워커힐·동화·한국관광공사 등 5개 면세점의 총 매출(8조589억원) 중 중국인 매출(5조353억원)은 62%를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올 1~9월 업계 1위 롯데면세점에서만 3조원을 썼다. 방한 유커가 줄어들면 매출 하락이 불 보듯 뻔한 구조다. 면세점 업체들은 이날 하루 종일 중국 지사·협력사들과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의논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다.

서울 시내엔 현재 9곳의 면세점이 있다. 유커 덕에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고 여러 업체가 뛰어들었다. 거센 경쟁을 거쳐 지난해 7월 5개 업체가 사업권을 새로 따냈다. 여기에 추가로 4곳이 오는 12월 발표를 거쳐 내년 문을 연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유커가 주는데 면세점만 늘어나면 새로 문을 열 곳도, 현재 운영 중인 곳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메르스는 3~4개월 영향으로 끝났지만 이번 조치는 장기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단체 관광객을 주로 유치하던 중가 호텔급도 불안에 떨고 있다. 박종모 라마다 호텔앤스위트 서울 남대문 총지배인은 “동대문이나 명동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 고객 절반은 유커고,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라며 “도심에 우후죽순 중저가 호텔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데 앞으로 공실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공실률이 높아진 중저가 호텔들이 가격 경쟁에 돌입하면 호텔 업계 전체가 ‘유커 20% 축소’ 후폭풍에 휩싸일 수 있다.

무분별한 저가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성화선·유부혁 기자 ssu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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