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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촬영’ 배려가 먼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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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29면

10일 밤 예술의전당에서 이반 피셔가 지휘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의 공연을 봤다. 지휘자와 악단의 호흡이 척척 맞았다. 앙코르도 독특했다. BFO는 합창단으로 깜짝 변신해 ‘아리랑’을 불렀다. 이들은 인사하고 퇴장했다가 다시 나와 인사했다. 음악회에서 ‘커튼콜(curtain call)’이라 불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앞좌석 부부 중 남편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러자 아내가 막았다. “사진 찍으면 안 돼.” 남편이 맞섰다. “괜찮아, 커튼콜이잖아.” 누구 말이 맞을까.


예술의전당은 원칙적으로는 관객의 촬영을 불허한다. 연주 중 촬영은 연주가의 연주와 관객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 커튼콜 때도 마찬가지다. 공연 전 나오는 “모든 종류의 녹음과 사진촬영 장비를 불허한다”는 안내방송대로다.


그러나 대관 공연일 경우 공연기획사의 입장에 따라 촬영 허용 여부가 달라진다. 커튼콜 촬영 허용 여부를 기획사에서 결정하는 것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연 중 국립오페라단의 ‘토스카’, 서울예술단의 ‘잃어버린 얼굴 1989’, UBC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커튼콜 촬영을 허락했다. 반면 뮤지컬 ‘위키드’와 ‘노트르담 드 파리’는 불허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예술의전당과 반대다. 자체 기획 공연은 커튼콜 촬영을 허용하고, 대관 공연은 기획사와 협의해 정한다. 최근 서울시향 공연은 시향 측 요청으로 커튼콜 촬영을 불허했다. 반면 자체 기획인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의 말러 공연에선 허용했다.


‘커튼콜 촬영’이란 주제가 본격적으로 음악팬들 사이의 화제로 떠올랐던 건 지난 8월 롯데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부터다. 새로 생긴 홀의 웅장한 파이프오르간과 색색 조명을 사진으로 남겨 기념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홀을 찍으려는 청중은 보통 어셔(좌석 안내원)들에게 제지당한다. 그런데 롯데콘서트홀 어셔들은 달랐다. “사진 촬영 안 됩니다. 대신 커튼콜 때 촬영 가능합니다”라고 응대했다. 덕분에 관객들의 거부감도 덜했다. ‘범죄자 취급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 본고장에서도 ‘커튼콜 촬영’은 정착되고 있는 추세다. 여름 음악제 때는 커튼콜 때 폰카를 꺼내든 청중들의 모니터가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빈 신년음악회 때도 커튼콜 때 폰카 뿐 아니라 아이패드로 촬영하는 모습이 볼 수 있다. 서구 연주가들도 사진 찍히는 데 거부감이 없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일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도 커튼콜 때 사진 촬영을 즐기는 모습이다.


음악평론가 유정우는 “커튼콜 촬영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다. 청중과 연주가의 새로운 소통 방법이다. 사인회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다만 공연 중 촬영은 반드시 자제해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손으로 만지는 것과 같다”고 당부했다.


‘커튼콜 촬영’은 휴대폰과 SNS의 발달로 막을 수 없는 추세란 얘기다. 문제도 없지 않다. 커튼콜 촬영 때 켜놓은 휴대전화에서 앙코르 연주 중 벨소리가 울릴 수도 있다.


공연장에 도착하면 휴대폰을 비행 모드나 무음으로 전환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휴대전화 알람 점검도 필요하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을 무심코 설정했다가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적어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의식이 선행돼야, 비로소 새로운 공연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글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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