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백과 적」 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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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필리핀의 「코리·아키노」 대통령에게 후한 갈채라도 보내고 싶다. 「아키노」 정부는「엔릴레」 국방상의 쿠데타 음모와 필리핀 공산당 (CPP)의 폭력 혁명 전략 사이에서 그 존립조차 불안했었다.
그러나 「마르코스」 정부가 14년 노력에도 실패한 「백과 적의 악수」를 「코리·아키노」가 해낸 것이다. 물론 「백과 적」의 협정이 항구적으로 존중된 예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점은 그대로 안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필리핀 국내로 한정시켜 보아도 필리핀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의 교시에 따라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몫을 크게 거들었던 「마르코스」추방이라는 것도 폭력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장정의 중간역, 어쩌면 첫걸음 정도로 간주한다.
공산당을 포함한 필리핀의 좌익 세력은 「마르코스」 독재를 타도한 사태가 「마르코스」나 「레닌」이 말한 부르좌 혁명이 아닌데 크게 실망한다. 그것이 부르좌 혁명이었어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곧 뒤따른다. 그들은 「마르코스」라는 봉건 군주가 「코리·아키노」라는 다른 봉건 군주로 바뀐데 불과하다고 지난 2월 사태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공산당이 「아키노」 정부와의 휴전 협정에 동의했다는 것은 폭력을 토대로 한 인민 전쟁으로 집권할 계획을 수정했거나 뒤로 미룬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협상이 성공한 것은 「코리·아키노」를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도덕적 바탕이 있기 때문이요, 구체적으로는 「마르코스」 독재하에서 부패한 「엔릴레」 국방상 같은 구 체제의 잔재를 파면하라는 공산당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코리·아키노」는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가는 이 나라의 몇 가지 경제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GNP (국민총생산)는 82년의 1백46억 달러에서 85년에 1백33억 달러로 8·7% 감소, 경제성장률은 82년의 1·9%가 85년엔 마이너스 3·9%, 소비자 물가는 82년 1백76%에서 85년 3백52%로, 우리 귀에 익은 외채는 82년 1백66억 달러에서 85년 2백62억5천만 달러로 늘었다.
82년부터 정치 위기를 맞자 「마르코스」 일가는 막대한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고, 거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마르코스」가 「코리·아키노」에게 남기고 간 것은 국민의 70%가 절대 빈곤층이라는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외채다.
필리핀의 이런 경제 사정은 공산주의 혁명의 최적의 온상이다. 그래서 「아키노」 정부는 「백과 적」의 휴전 협정이 언젠가 깨지기 전에 경제 개발을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민주주의로 확대시켜 공산 혁명 세력이 발붙일 곳을 제거하는 일이 급하다. 공산당 쪽에서도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아키노」 정부의 연평균 6·5% 성장의 경제 재건 계획의 성공이 열쇠다.
필리핀 공산당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베트남의 캄란만을 연결하는 소련의 해군 작전 라인은 전혀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필리핀의 미군 기지 철수를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휴전 협정 합의는 한국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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