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버스 화재참사 경부고속도로, 좁은 갓길 방치한 채 6년째 공사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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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큰 사고가 한번 날 줄 알았다.” “지나다닐 때마다 겁이 난다.” 관광버스 화재사고로 10명이 숨진 경부고속도로 언양~영천 구간을 오가는 운전자들이 토로하는 불안감이다. 고속버스 기사 염재훈(62)씨는 “공사에 따라 길이 계속 바뀌고 급커브가 많다. 노면 평탄작업을 제대로 안해 울퉁불퉁하다”며 “기사들이 ‘죽음의 도로’라 부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공사구간을 많게는 하루 10번까지 오간다. 19일 화재참사 현장을 조사한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아무래도 임시도로다 보니 곡선길의 휜 정도나 노면 상태 등이 운전하기 좋은 조건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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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인 경부고속도로 언양~영천 구간. 도로·갓길폭이 좁고 방호벽이 설치돼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언양~영천구간에선 2013년 화물차와 승용차의 추돌로 6명이 숨지는 등 2007~2015년 48건의 사망 사고(도로교통공단 사고분석시스템 기준)가 나 57명이 숨졌다. 두 달에 한 명이 사망한 셈이다. 또 사망사고 48건 가운데 20건은 차끼리 충돌이 아닌, 차가 단독으로 방호벽에 부딪히거나 추락해 운전자 등이 숨지는 사고였다. 갓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갓길 쪽에 공사장과 도로를 구분하기 위한 방호벽이 있어 그만큼 충돌사고가 많은 것이다. 김진선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공사중이라도 갓길이 없으면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사고현장 기자가 다시 가보니
2011년부터 6차로 확장 공사 진행
국토부 2012년 공사도로 지침 개정
언양~영천구간은 새 기준 못 미쳐
도로공사 “기존 공사는 대상 아냐”

지난 13일 10명이 숨진 언양 관광버스 화재참사에도 경부고속도로 언양~영천구간은 여전히 교통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공사를 맡은 한국도로공사는 사고 이후에도 별다른 개선작업 없이 공사를 하고 있다. 문제의 구간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에서 경북 영천시 봉촌동을 잇는 55.03㎞. 2018년 12월 완공예정으로 2011년 12월부터 4차로를 6차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2012년 9월 개정한 ‘도로 공사장 교통관리 지침’에 따르면 이 구간의 도로 폭은 최소 3.5m여야 한다. 현재 이 구간의 도로 폭은 3.5m로 기준을 충족하지만 방호벽을 설치하면서 기존 3.6m에서 10cm 줄어 운전자들의 체감 위험도가 높다.

또 공사 전 갓길은 3m지만 지침상 최소 갓길은 2차로 오른쪽에 1m, 중앙분리대쪽에 0.5m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언양~영천구간 갓길은 기준 미달인 0.6m 정도이다. 도로공사가 개정전 지침(갓길 기준 0.5m)을 적용한 탓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2011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개정안 적용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침에는 ‘이미 시행 중인 공사에 대해서는 발주기관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적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도로공사가 이를 무시한 것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착공(2011년) 5년 전부터 설계에 들어가 이미 진행된 사항을 바꾸기 어려워 기존 지침을 따랐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사를 위한 땅을 많이 사들이면 공사 뒤 유휴지로 남기 때문에 최소 폭만 확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실제 도로와 갓길 폭이 지침에 맞는지 확인 후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도로 개선안을 작성할 계획”이라며 “운전자들이 공사 구간에서의 제한속도 80㎞를 준수하도록 규제 방안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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