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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연금 무너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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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도쿄(東京)에서 어머니.자녀 2명 등 3명과 함께 살고 있는 자영업자 고바야시(小林.43.여)씨는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지만 보험료는 내지 않는다. 대신 민간 생명보험사에 가입한 개인연금은 매달 1만여엔씩 꼬박 내고 있다.

일본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지난해 대상자 열명 중 네명꼴로 불어났다. '국민연금 붕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일본 정부는 재산압수 등 강제징수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실태=보험료 납부 거부 현상은 199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보험청에 따르면 납부 거부자가 92년에는 14.5%였으나 10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는 납부 대상자의 37.2%에 이르렀다.

전년보다 8.1%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납부율(62.8%)이 60%대로 떨어진 것은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61년 이후 처음이다. 젊은 층일수록 납부거부 현상이 심하다. 20대의 경우 절반 정도가 내지 않았다.

이들이 내지 않은 보험료는 약 1조엔. 미납부자에다 납부면제자까지 합치면 국민연금 가입자(2천2백여만) 가운데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은 40.3%에 이른다.

◆원인=일본 언론들은 "장기 경기 침체 속에 90년대 후반 들어 도산.실업이 증가하면서 보험료가 부담스러워진 사람이 많아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회보험청에 따르면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의 64%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지난해 기업을 퇴직, 후생연금에서 국민연금 대상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47.4%가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주가하락 등으로 인한 운영수익 감소와 미납부자 증가로 국민연금 재정상태가 갈수록 부실해지면서 '돈만 내고 연금을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미납부자의 55%가 생명보험사의 개인연금 등에 가입하고 있고, 11%는 연 수입이 8백만엔 이상인 고소득자였다. 또 지난해부터 보험료 징수업무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부로 이관되면서 징수실적이 저조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전망.대책=일본 정부가 연금개혁 차원에서 내년에 보험료를 인상하고 지급액을 줄일 방침이어서 전망은 더욱 어둡다. 이에 따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은 최근 "정부가 연금붕괴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는 등 적극 개입키로 했다.

사회보험청은 2008년까지 미납부자를 20% 아래로 낮춘다는 목표 아래 다음달 '국민연금대책본부'를 설치, 재산이 있으면서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선 재산을 압수하거나 다른 사회보험 혜택을 중지하는 등의 강제징수 수단을 도입키로 했다.

또 "소비세율을 높여 더 걷은 세금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모두 충당하자"는 주장이 더욱 거세져 소비세율 인상 논란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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