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사진인가] 下. 국내작가·컬렉터 인식전환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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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사진학과는 2~3년제 대학을 포함해 무려 50개. 엄청난 숫자의 이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딱딱한 커리큘럼'은 국내 현대사진의 제자리 걸음으로 직결되고 있다. 우선 국내 대학들은 상업사진과 순수사진의 사이를 칼로 두부 모 자르듯 구분하고 있다. 한국 대학만의 칸막이 구조다.

그런 풍토는 유연하지 못한 것은 물론 거의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즉 광고사진.패션사진과 서로 넘나드는 현대사진 고유의 탄력성 내지 장르 융합 현상에서 한참 멀기 때문이다. 예술과 일상 사이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에 이런 이분법은 순수사진을 무슨 '심오한 철학을 담은 상징'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반영하지만, 그것은 일반 미술대학의 풍토와 구조적으로 정확하게 닮은꼴이다.

미대에서 영상을 자유롭게 즐기고 실험하게 하는 대신 19세기적 데생 기능부터 강조한다. 일본.한국에서 주로 그렇다. 때문에 현대의 영상 실험에서 한참 뒤처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또 사진학과의 경우 프린트 기술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나만의 프린트 기술'을 마치 도제수업 하듯 강조하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영상에 대한 필요충분한 지적(知的) 훈련은 뒷전이다.

미술사와 작품 분석에 대한 풍부한 배경이 증발하는 것이다. 대형 작가의 기근, 국내 사진의 국제 조류와의 격차는 그 때문이다. "요즘 현대사진은 한 마디로 붓대신 카메라로 이미지를 그리는 시대다. 해외 대형 작가 상당수가 사진학과 출신이 아니라 일반 회화를 전공한 이들에게서 배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림미술관 이수균씨의 말은 핵심을 짚은 것이다.

문제는 국내 사단(寫壇)과 그 내부의 작가들이 이런 보수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험을 가로막는 카르텔 구조다. 그 점은 60세 전후 중진들에서 40대 중견까지 엇비슷하다.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젊은 작가들은 공허한 아류만을 재생산해낸다. 사진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회화와 넘나드는 국제조류와의 격차는 그때문이다.

즉 사진 장르에 스스로 갇혀 있는 한국사진은 우물 안의 개구리인 셈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특정 주제를 걸고 매머드급의 기획전을 가지려 해도 회화 따로, 사진 따로의 딴집 살림 전시를 꾸밀 수밖에 없다. 외국의 경우 사진가.화가.조각가라는 호칭보다 '작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사정과 많이 다른 것이다.

문제는 이런 회화.조각.사진.설치 등 칸막이 구조를 유독 좋아하고, 거기에 갇히는 구조는 컬렉터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작품'이면 충분한데 '장르가 뭐냐'부터 따지는 게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장르 교배와 혼혈의 시대에 19세기적 혈통 구분은 안정적인 사진 수요층을 채 형성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착오도 문제다. 사진은 10점 내외의 에디션 모두가 진품. 그런데도 '나만의 작품'에 대한 집착은 낯가림을 부채질한다. 왜 사진인가? 그것은 사진이 현대 미술의 견인차 장르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또 이미지 작업의 중추다. 국내 사진계가 이 흐름에 동참하는 것은 '영상미학의 원더랜드'에 동참하느냐, 낡은 외딴 섬을 고집하느냐를 갈라놓은 분기점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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