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마로니에미술관 '공원 쉼표 사람들'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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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하루 드나드는 이가 어림잡아 3천명이 넘는 도심의 쉼터다. 놀이터에 나온 아이들부터 농구를 즐기는 청소년, 배드민턴을 치는 가족, 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연인, 바람을 쐬러 나온 노인에 그늘을 지붕 삼은 노숙자까지 각계각층 사람들이 장터마냥 붐빈다. 이렇게 떠들썩한 공원 앞마당과 달리 뒤쪽에 선 붉은 벽돌집은 조용하다.

1975년 옛 서울대 문리대가 관악으로 옮겨간 뒤 79년에 세워진 마로니에 미술관(옛 미술회관)이다. 공원에 바로 붙어 있는 미술관인 데도 하루 관람객 수는 평균 3백명. 일년내 전시가 열리지만 거의 담벼락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다. 24년을 침묵하던 마로니에 미술관이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나 여기 있어요, 좀 봐주세요."

8월 2일부터 30일까지 문예진흥원(원장 현기영)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공원 쉼표 사람들'전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려는 미술관의 변신전이다. 공원에 들어선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번쩍인다.

공원 들머리부터 눈길을 끄는 건 울긋불긋한 천자락들. 공원 여기저기에 솟아난 조각들 위에 씌운 이 작품에 박용석씨는 '공공 조형물을 위한 추상적인 옷'이란 제목을 붙였다. 시선 한 번 못 받던 조각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위장복이다.

벤치 위에는 헤드폰이 놓여 있다. 박주연씨는 공원 여기저기서 채집한 소리들을 바탕으로 옛 서울대 문리대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 마로니에 공원의 역사를 들려준다. 눈을 들면 '아!'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미술관이 보인다.

형무소처럼 칙칙하던 건물이 색띠를 둘러 환해졌다. 양주혜씨가 만든'소요(逍遙)'다. 상큼한 기분으로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최민화씨가 그린 마로니에 공원 풍속도가 우리 모습을 비춘다.

전시장 가운데 흰 방에 머리를 들이밀자 세 벽면에서 화면이 느리게 돌아간다. 정정화씨는 공원을 촬영한 비디오 작업으로 복잡하면서도 명상적인 공원의 성격을 보여준다.

전시실 안에 인공 공원을 만든 김승영씨, 시민공원의 추억을 재현한 강홍구씨, 수많은 기능과 공간이 뒤섞여 있는 공원 환경을 재구성한 배영환씨 등 공원에 깃든 모든 것이 되살아온다.

8월 23일 오후 2시 마로니에 미술관 강당에서는 바람직한 문화공원의 모델을 찾아보는 '공원과 미술'심포지엄이 열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내가 꾸민 미술관'과 '공원 만들기'등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02-760-4726.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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