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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전쟁」스트레스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일본이 한국부분에 관한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데 대해 한국이 「간섭」하면 일본인들이 스트레스가 쌓여 한일간에 전쟁이 일어날수 있다는 협박이 나왔다.
망언으로 악명 높은「후지오」를 신국가주의의 기수로 떠받들고 복고조 역사를 지킨다는 취지로 모인 일본중의원의「국가기본문제연구회」소속 의원 37명이 28일 이규호 주일대사에게 몰려가서 집단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들 말대로 자기나라 소년들에게 일본역사를 어떤 식으로 유리하게 비틀어 가르치건 일단 그건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역사현실에도 상대가 있다. 왜곡되는 부분이 일본 제국주의의 처참한 피해자였던 한국에 관한 것이라도 일본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생각해서 우리들더러 입다물고 있으라니 이건「후지오」망언,「구보타」망언 뺨치는 한국인 모욕이다.
우리가 일본 때문에 본 피해를 그들의 스트레스에 비할까.
일본 사람들이 지구촌을 떠나서 자기네끼리 산다면 야 미국이나 소련을 일본의 식민지로 그려낸들 누가 뭐라겠는가.
그러나 일본이나 우리나 진공상태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필칭『진실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 속마음을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풀어 가면서 우호관계를 다졌으면 한다』 고 이 대사에게 말했다.
그 정도라면 신국가주의의 집단증후군에 빠져 있는 자들의 또 한차례의 집단망언이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협박을 들어 보라. 한국이 지금처럼 야스쿠니신사참배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간섭하면 일본인들의 스트레스가 쌓여 10년, 20년 뒤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선전포고」예고다.
지금부터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면 한-미, 미-일 안보조약이 끝나고 그래서 미국의 견제 력이 없어지는 시점에 가서 일본이 한국을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말의 난폭한 외교적 표현 아니고 무엇인가. 꼭 신판정한 론 같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모르는바 아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국방력까지 포함한 모든 권력을 악으로 부인하는 일종의 일본형 아나키즘 풍의 평화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래서 평화 헌법을 고치자는 개헌론이 나오고「후지오」망언에 대해 많은 일본 사람들이 갈채를 보낸다. 국가의 안전보장이야말로 최대의 국민복지라는 슬로건이 크게 고개를 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건 일본의 국내 사정이다. 그걸 빙자하여 역사의 잔인한 가해자가 바로 금세기에 우리가 본 피해에 대해 침묵을 지키라고 하니. 그들은 지적 저능아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런 사람들이 12월에 한국에 몰려와서 우리 당국자들과 얘기한들 한일우호증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역사에서 교훈 얻기를 거부하는 국민들은 결국 역사의 보복을 받고야 만다는 사실에 개안부터 하고 겸허하게 사죄하는 자세가 아니면 그들의 방한을 우리 쪽에서 거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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