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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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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어의「홀로코스트」(holocaust)는「대학살」이란 뜻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의olo-kaustos,즉「전신을 태운다」는 뜻에서 나왔다.
엄격하고 잔학하기로 이름 높은 고대 유다의 4대 벌에도 이런 참혹한 형벌은 없었다. 「홀러코스트」는 로마시대 기독교도 박해의 산물로 알려졌다.
영국 시인「밀턴」의 시구에도 이 단어가 보이지만 미국에서는『백경』의 작가「엘빌」 이 처음 썼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홀로코스트」라는 말은 그 의미가 제한되었다. 주로 나치의 유대인학살을 두고 쓰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잔학상이 얼마나 자심 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홀러코스트」란 말을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모든 유대인의 목소리로「재생」시킨 사람이「엘리·위젤」이다.
그는 1944년 l6세 때 나치수용소에 끌려갔다. 수용소에서의 첫날밤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을 길고 긴 밤으로 몰아넣은 수용소에서의 첫날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날 밤 나는 7번 저주하고 7번 맹세했다.…나의 신념과 삶의 의욕을 영원히 탈취해 간 그날 밤의 불꽃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위젤」은 그 증오를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극복하여 금년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됐다. 그는「미움」보다「사랑」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모든 인류에게 전한「평화의 메신저」였다.
노벨 평화상은「평화」라는 어휘 때문에 숙명적으로「정치」가 개입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언제나 미묘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이런 일이 있었다. 35년의 수상자「카를·폰·오시에츠키」는「히틀러」의 미움을 받아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평화상이 주어졌다. 이에 격노한「히틀러」는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시켰다.
60년의 수상자「루툴리」도 마찬가지였다. 평화적인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벌이다 자택연금 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 자존심을 크게 상한 남아연방정부는 갖은 압력을 다 넣었지만 세계 여론에 굴복, 그에게 스톡홀름 여행을 허가했다.
유명한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바웬사」(83년 수상)는 정부의 반대로 부인과 아들이 대리 수상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l901년 이후 금년까지 노벨 평화상은 수상자를 내지 못해 그냥 거른 해가 모두 19번. 그 가운데는 1차 대전 중 3년(14∼16년) 2차 대전 중 5년(39∼4년)이 포함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평화상을 유일하게 두 번이나 받은 단체가 국제적십자사인데, 공교롭게도 양 차 대전이 끝마무리를 지을 때인 17년과 44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전쟁과 평화는 같은 고리를 맞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는 증오와 살기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평화인의 의미는 더욱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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