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의 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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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정부안의 견해는 충분히 주목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정부의 장기전원개발계획과 관련하여 에너지수급전반에 관한 면밀한 분석과 전망, 그리고 우리의 처지와 능력에 맞는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장기 수급정책의 필요성에 직면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이 같은 필요성에 얼마나 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전원개발과 관련하여 최근 수년간 정부와 연구기관 등에서 조차 현재의 설비과잉과 자원낭비를 우려하는 견해가 줄곧 제기되어 온 점은 결코 관과 해서는 안될 중요한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발전시설은 지난 70년대 이후 계속 과잉설비를 보유해 왔고 작년 말 현재 전력 예비율이 70%를 상회함으로써 약 50억 달러에 해당하는 발전시설이 유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왜 이 같은 낭비가 장기간 존속되도록 방치되었는지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장기전원개발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보장을 전제로 하고 있고, 부존자원의 한계로 인해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막중하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이 같은 명분만으로는 지금의 낭비와 자원배분의 왜곡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현실에서 외채절감의 긴절성을 앞설 명분은 아무 데도 없으며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이것은 비단 한전 혼자서 총 외채의 13%가 넘는 63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은 아니다.
더더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현재의 과잉설비와 전력예비율을 줄이기 위해 기존설비를 조기 폐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형편이 언제부터 그 같은 조기 스크랩을 용인할 만큼 넉넉해졌는지 알 수 없으나 명목상 계속 늘어나고 있는 총 외채규모로 보아 결코 그 같은 낭비는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낭비와 외채누적이 한전의 경영부실에 직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비싼 전기요금을 물게 만든 점은 시정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측면이다.
이 모든 현실과 여건을 고려할 때 값비싼 원전건설의 계속은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더구나 원전건설은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 날이 갈수록 공기도 짧아지고 건설 단가도 낮아지는 추세에 있음을 볼 때 서둘러 건설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 보다는 국내 유휴시설이나 잘 관리, 보수하여 발전단가를 낮추고 부실경영을 개선하는 것이 한전의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원전건설은 이 같은 경영쇄신과 기존설비의 활용이 한계에 이를 때 다시 검토해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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