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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수상의 방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 아시안게임 참관을 명분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나카소네」 일본 수상의 이번 나들이는 그로서는 어려운 발길임에 틀림없다.
그가 선거 대승의 보너스로 임기 1년을 연장 받긴 했지만 지금은 분명히 그의 시정말기에 해당된다.
이럴 때 그가 한국방문을 자원한 이유는 이해된다. 그것은 구미를 앞지른 경제적 성공과 일본 선거사상 유례 드문 총선 승리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 보수세력의 위력을 전 아시아인 앞에서 과시하는 챔피언이 되고자 한다는 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세력을 바라보는 아시아의 눈은 차갑고 따갑다.
과거 일본의 극우 보수파는 제국주의적 목표를 달성키 위해 군국주의를 수단으로 하여 동아시아를 침공하면서 반인간적 야만행위를 자행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런 군국주의가 「나카소네」 영도하의 자민당이 지난 7월의 선거에서 대승한 후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극우단체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이를 옹호하는 문부상 「후지오」의 망언, 그리고 한국 대사관 앞에서의 계속된 반한 시위를 통해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로 표면화했다.
이런 한일관계가 바로 「나카소네」 수상의 방한을 보는 한국인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30억 아시아인의 대축전은 일본 보수진영의 자기시위나 특정 정치인을 위한 인기자랑의 마당이 될 수는 없다.
「나카소네」 수상이 방한을 앞두고 「후지오」를 해임하는 등 한국을 의식하여 취한 몇 가지 제스처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일본 군국주의의 충실한 신봉자이며 일본의 아시아침략 전쟁 때 죽은 일본 군인들의 안치소인 야스쿠니(정국) 묘소를 참배하는 수상으로서의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더구나 우리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나카소네」의 방한이 무슨 실속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 외국인의 지문날인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나 그것이 한국에 대한 선심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지문날인제도는 문명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낙후되고 편협한 제도로 공인돼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개선이 아니라 마땅히 폐지돼야할 제도다.
우리는 84년 9월의 전 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일본이 「일한 신시대」라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에게 공약한 내용을 과연 얼마나 실현했는지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개선, 무역 불균형의 시정, 기술교류의 확대, 왜곡 역사교과서의 교정 등은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개선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 아시아의 진정한 이웃으로서 공존공영을 바란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입증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경제의 번영만으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거기엔 도덕적 신뢰와 헌신적 봉사가 수반돼야 한다.
이번 「나카소네」 수상의 아시안게임 참관과 방한은 일본이 진정한 아시아의 벗이며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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