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귀신물러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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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개발지역 투기에 손대기전에는 겨우 로열승용차 1대에 비좁은 50평짜리 아파트에 살았지"
"어머, 너 그 동안 너무 고생하며 살았구나. "
강당을 가득 메운 1천5백여 학생들 사이에 폭소와 야유가 터졌다.
9일 하오5시30분 고려대 대강당 「'제2차 안암해방대학」행사장.
보석으로 치장한 복부인 분장의 남녀 학생 2명이 서울상계5동 재개발을 풍자한 단막극을 진행중이다.
고대 총학생회가 지난 7월하순부터 준비해온 이날 행사.
1천5백여 관객 대부분은 고대학생들이었지만 상계5동 철거지역주민도 일부 끼어 있었다. 상오8시부터 교문에서 신분증검사 감시망을 뚫고 용케 들어와 학생들이 연극으로 꾸며 보여주는 자신들의 얘기를 음미하고 있었다.
"철거를 계속 반대하면 칼잡이들을 동원하면 되지요. "
복부인역 학생의 대사가 떨어지자 선글라스에 골프장갑을 낀 구청 철거반원 차림의 학생이 등장했다. 각목을들고 망나니 춤을 추는 철거반원에 일제히 터지는 학생들의 야유.
마침내 집이 헐렸다. 주민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폐허가 된 무대위, 이어지는 한풀이 무당굿. 괭과리소리. 장구소리. 소리사이에 무당의 긴 사설이 철거 영세민의 한을 대변했다.
"철거민 잡아먹는 철거귀신은 물러가라, 쉬이-".... 한마당 한풀이가 끝난 뒤 관객들은 삼삼오오 흩어져갔다. 학생들 틈에 끼어 나오던 상계동 주민들은 철거반대시위 끝에 이날 새벽 구속수감된 동료주민 3명을 면회하러 경찰서로 간다며 교문을 나섰다.
시민들의 원이 구청도 경찰서도 아닌 학생들의 행사장 연극무대에서 한풀이로 해소되는 오늘이 안타까왔다. <김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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