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제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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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는 1927년 우리나라 최초로 JODK 경성방송국이 개국 한지 60년째를 맞는 해이고 오늘은 23회「방송의 날」이기도 하다.
비록 일제치하이긴 했으나 우리나라에 전파매체가 도입된 것은 당시로서는 국민들에게 경이적인 사실이었고 우리의 매스컴 발달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뒤 관영방송 단독체제에서 종교 복음방송과의 이완체제를 거쳐 60연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본격적인 민간 상업방송 시대의 꽃을 피우기도 했었다.
지난 80년말 정부시책에 따라 이른바 공영방송체제로 전환한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코 길지 않은 우리의 방송사이지만 그 동안 겪어온 변화와 우여곡절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요즈음의 라디오 및 TV방송을 보고 있으면 금석지감이 들 정도로 기술과 내용 면에서 많은 발전과 향상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전자 및 방송기술의 발전과 첨단기술에 의한 방송기재의 발달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힘입은바 크다.
그러나 우리 방송인들의 독자적인 기술·기재의 개발과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의한 노력 또한 낮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방송의 날을 맞아 그들에게 축하와 치하의 말을 보내는 것도 결코 무의미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방송이 해야할 일은 많다. 아직도 전국적으로 난시청지역이 많고, 방송통신위성에 의한 방송전달체제의 혁신도 당면과제다. 선진국에서 각광을 받고있는 케이블TV의 실시와 이를 이용한 정보와 통신수단의 현대화 등에도·방송기술개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한 같은 「공영방송」끼리의 프로그램 대응편성이나 비슷한 프로그램의 모방제작, 호화로운 잔치판 쇼, 스포츠중계의 남발, 비현실적인 사랑타령이나 어릿광대 짓 같은 드라마와 코미디 따위가 아직도 눈에 띄는 것은 국민의 공영방송이 그 본연의 자세를 정립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는 일면이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보도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는 올해들어 크게 사회문제화 되기에 이르렀고, 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아직도 날카롭다.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일어난 동기도 「공영방송 보도의 편파성」때문이었고 그 목적이 시청료의 불납이 아니라 「보도의 공정성 회복」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헌법개정문제를 좌우할 헌특이 공청회 실황의 중계문제로 벽에 부닥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방송보도가 지금껏 쌓아온 대외적 인상과 실제가 어떠했고, 앞으로 우리 국정과 국가의 운명에 미칠 영향이 어떻겠는가를 심각히 성찰해야할 시점이다.
방송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겠지만 속보성과 동시성·확산성을 지닌 막강한 매체다. 그런 힘을 가진 수단이 정직하고 공정한 목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을 담지 못한다면 그것이 국민에게 미치는 폐해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제 국민들은 멍청히 TV방송을 그대로 수용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즐길 것은 즐기면서도 비판하고 거부할 줄 아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방송인들이 이를 선도는 못할망정 그 수준을 뒤쫓아가지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놀랄만큼 발전된 기술과 형식에 걸맞게 방송이 모든 국민의 환호를 받는 명실공히 「공영방송」의 정신과 내실을 정비하도록 당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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