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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에서 온 편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9호 29면

런던 출장에서 금요일 오후까지 빡빡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날 저녁, 귀국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차를 빌려 교외를 둘러보리라 마음을 먹고 100마일쯤 거리가 되는, 외진 곳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시내에서 차를 빌려 공항에서 반납할 생각이었다. 아뿔싸, 렌터카 회사의 카운터에 앉은 남자는 내 면허증으로는 차를 빌릴 수가 없다고 했다. 오래전에 영국에 잠시 살았던 이유로 가지고 있던, 종이로 된 면허가 작년에 폐지되었단다.


종이 면허를 처음 받았던 20여 년 전, 궁금하긴 했다. 사진 한 장 없는 이 면허증이 사고가 나거나 법규를 위반했을 때 어떻게 믿을 만한 증명서 역할을 할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탄했다. 한 장의 종이와 그 위의 서명을 믿는 ‘신뢰’에 탄복했다. 전해들은 말이나 본 것만으로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만져보고야 믿은 도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제 편지와 서명에 가장 큰 무게를 두었던 영국의 신뢰 교환체계가, 믿음의 매체가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인가. 상념이 꼬리를 물지만 그것에 잠겨있을 틈이 없다. 국제운전면허증을 챙겨오지 않은 동행인들에게 재미난 일정이 될 것이라 큰소리 친 것을 수습해야 하는데 앞이 캄캄했다.


차를 빌려 호텔에 맡겨 둔 짐을 찾아 목적지까지 쌩쌩 달려갈 계획이었는데 완전히 틀어졌다.


워낙 오지에 호텔을 잡아서 무사히 기차를 탄다고 해도 그쪽 기차역에서 또 택시로 한참 가야 한다. 심지어 동네 택시가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 우버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몰고 온 운전사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런던으로 이주한지 10년쯤 되었다는 청년이다. 선뜻, 자기 차로 목적지까지 가자고 한다. 우버 택시 미터요금으로 막히는 러시아워를 뚫고 3시간여의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놀란 것으로 보아 우버 택시를 타고 런던에서 온 손님은 처음이었나 보다.


우리를 목적지까지 실어 준 라비울라는 내가 런던에서 만난 열 번째 우버 기사였다. 한 시간 이내의 거리는 많이 걸었는데도 런던에서 우버 택시를 많이 타게 된 이유는 지리에 어두운데다 약속 시간에 쫓겨 빨리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가는 곳을 입력하고 내가 있는 곳의 GPS 정보를 이용해 보내면 따로 계산을 치를 것도 없이 바로 타고 내리면 되었다. 셋이 함께 움직인 우리 일행에게 버스나 지하철보다 별로 비싸지 않았다. 만약, 런던의 명물인 블랙캡을 이용했다면 여러 가지 불편함에 더해 비용은 몇 배로 써야 했을 것이다. 덕을 좀 보았다.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우버에서 편지가 왔다. 우버를 많이 이용했다고 또 이용해 달라는 광고성 편지려니 했는데 새로 취임한 사디크 칸 런던 시장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달라는 읍소였다. 런던 시장이 공공자금으로 노후화된 블랙캡을 교체하는 돈을 마련하는 한편 우버 기사들에게 영어로 된 필기시험을 보도록 한 모양이다. 보험도 1년 단위로 가입하도록 했다. 공유 경제를 표방한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들이 늘 겪는 갈등이다. 기존의 사업자들이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우버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버를 지지해 달라는 이유를 보면서 고개를 살짝 갸우뚱 했다. 편지에는 칸이 모두의 시장이 되어야 하는데 블랙캡 사업자 편만 든다고 불평을 하면서 주로 이민자인 우버 기사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된다고 썼다. 실제로 내가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처음 도착한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만난 알바니아 출신 퍼파림부터 열 번째로 만난 라비울라까지 한결같이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이 우버를 통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들을 도울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우버가 할 소리는 아니다.


최근에 우버는 무인 자율자동차와 관련해서 포드·볼보·도요타 등의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받았다. 두 주 전엔 피츠버그에서 자율주행 택시의 시범 운행까지 마쳤다. 우버가 꿈꾸는 미래에는 이민자들이 운전하지 않는다. 우버는 어려운 사람들의 일자리에 관심이 없다. 런던시장이 어떤 조치를 하든, 결국엔 블랙캡 기사들도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처음에 남는 자원을 모아서 다시 나누는,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많은 투자를 받는 순간 이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으리라. 런던 시장을 향한 볼멘소리와는 달리 우버는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다가 기계가 대체할 수 있으면 그들도 해고해버릴 것이다. 좋은 뜻이 당장의 편리 때문에 묻히고 결국은 이윤이 놓인 방향으로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은 숙명인가.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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