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바다는 아직 비어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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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울산은 고래들의 고향입니다. 고래잡이를 하던 장생포항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직도 울산에 고래고기집들이 성업 중이어서가 아닙니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그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50여 마리의 고래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더러 바닷가 땅속에서 5천년 전의 고래뼈가 나오기도 하는 곳이 울산입니다.

고래는 6천만 년 전에는 육지에 살던 포유동물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고래는 2천5백만 년 전에 육지를 떠나 바다로 생존의 터를 옮겨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되었습니다. 외계인이 있었다면 멀리서 지구를 지켜보고 '음! 지구의 주인은 고래야.' 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바다에 그 고래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고래가 사라진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사람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고래를 잡아버렸고, 가까운 바다는 고래들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고래가 없는 바다는 주인 없는 빈집입니다. 그 바다에 주인 쫓아내고 사람이라는, 고래와 같은 포유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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