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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자본주의 정신|김중웅<KDI선임연구위원·경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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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이 시들어 가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이 대도시가 점점 사양화 되어 가고 세찬 일본풍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것이 10년만에 이 도시를 찾은 나의 첫 인상이었다.
분명 뉴욕의 활기는 침체되어 있다.
맨해턴 브로드웨이의 밤은 동경 긴 자의 화려한 밤거리에 비해 무척 초라하고, 컴컴한 거리는 온통 흑인 천지다. 백인은 외곽으로 좇기고 도시중심부는 공동화되고 슬럼화 되어 간다. 사람들의 질서의식도 약해져서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도로를 횡단하는 것이 예사인가 하면 마구 버린 휴지조각으로 길은 지저분하고 성범죄·마약 범 등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시장에서 일본상품은 계속 판을 치고 생선회를 먹는 미국인이 날로 늘고 있다. 이러한 인상이 물론 부분적인 관찰에서 오는 것이고 미국이 여전히 자유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미국이 과거 전성기의 질서 있는 풍요로움을 잃어 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어째서 미국의 활력이 저하되고 세계경제대세의 흐름이 서서히 미국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 경제정책의 실패 때문인가, 소위 레이거 노믹스의 실패도 그 원인의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정책의 실패보다는 미국정신의 쇠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청교도적 근검정신과 뉴프론티어 적 개척정신이 미국경제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신이 차츰 약화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산업생산성이 일본에 뒤지는 것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비경제적측면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본 보통사람들의 평균적인 성실도가 미국인의 그것보다 훨씬 높기 때문인 것이다. 성실은 사회나 개인에게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의 근본이 되는 가치 기준이다. 이와 같은 정신자세의 차이에서 생산성의 격차가 생기고 무역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직이 아시아의 드라마를 쓴「구너·뮈르달」은 남아시아 제국의 빈곤의 원인을 자원이나 자본부족이 아니라 이 지역 주민의 불합리한 생활태도와 인습적인 사회제도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아시아가 가난하게 된 것은 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인생관이 잘못되어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비능률·비 활동·비합리의 악을 없애고 능률과 활동과 합리의 생활기품, 사회윤리를 일으키는 국민의 인생관 개조가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근면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철학을 통해 빈곤을 벗어나 성공적인 개도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상응하는 의식혁신이 따르지 못하여 실속보다는 외형을 추구하는 형식위주의 물질만능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었다.
또 자본주의본래의 정신도 제대로 소 화하지 못 한 채 고유의 정신문학유산도 상실하여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하였다. 최근에 발생한 독립기념관화재나 칼부림살인사건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밝고 건전한 인생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경제가 당면한 산적한 문제를 풀고 선진국이 되려면 새로운 의식구조 개조를 위한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한국적 자본주의, 한국적 경제정신을 정립하고 이 기반 위에서 우리의 새로운 경제도약을 추진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꾸어야 할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의 세 가지 정신을 강조하고 싶다.
그 첫째가 성실한 직업정신이다. 지금은 다양성과 전문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국민각자는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전문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고 현재의 자기처지에 만족 할 줄 아는 정신, 다시 말하면 생활인으로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자기의 능력과 역할을 명확하게 깨닫고 전체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 둘째는 합리적 행동의 정신이다.
이것은 주먹구구식의 적당 주의식 생활방식이 아니라 정확한 계산감각과 현상파악으로 투입된 원인행위에는 그에 따른 합당한 결과를 기대하는 정신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기업들은 코스트 관념이 희박하여 외형확장에만 관심을 쏟았고 내실을 다지고 실리를 챙기는데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는 경제원칙을 목표로 하되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 행동의 결과로서 이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째는 자유경쟁의 정신이다. 이는 능률을 으뜸으로 여기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응능 보수를 존중하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과거 우리기업은 자본축적이 없고 기술개발이 유치한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비호와 특혜로 다른 분야의 희생 위에 크게 성장하였다.
이제 기업은 자기 힘으로 치열한 국제경쟁에 이겨야 한다. 다만 정부는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중소기업·농촌·근로자계층의 지원에 힘을 쏟아 경제 각 분야를 고루 균형되게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 한마디로 한국적 자본주의정신을 말해 본다면 국민개개인모두가 한국인이라는 자각 하에 자기분수와 역할을 알고 합리적 행동과 자유로운 경쟁으로 최대의경제적 효과를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제 정부는 모름지기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자가 응분의 처우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기반과 가치관정립에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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