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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묻혀 자연을 그린다" 미술인들 탈서울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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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화가들이 서울을 떠나고 있다. 올들어 서울을 떠난 화가만도 10여명. 이미 서울을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화가까지 합하면 50명이 넘는다. 이들의 탈서울은 시골에 아틀리에를 짓고 흙냄새 맡으면서 자연을 그리겠다는것-. 밭갈고 씨뿌리며 가축도 기르고 과수도 가꾸면서「살으리 살으리랏다 전원에 살으리랏다. 맑은 공기 마시며 전원을 그리리랏다」 를 실천하고 있다. 미술인들의 이상향「전원별천지도」를 그리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판교에서 신갈쪽으로 접어들면 한성컨트리클럽이 나선다. 여기서 5백m쯤 내려가면 경기도용인군구성면마북리구교마을이다.
원로서양화가 장욱진씨(70)가 지난6월말 이곳에 닺을 내렸다.
갑우(1894년)년에 지은 대지2백27평의 농가를 사들여 30평 남짓한 살림집으로 개조했다.
화실은「사랑방」, 부엌은「다방」이라고 써붙여 놓고 작업하고있다.
장씨는 이집에서 부인 이순경여사와 단둘이 살면서 그림만 그린다.
공기가 맑아 기관지천식증세도 좋아지고 텃밭에 채소를 가꾸면서 운동, 식욕이 왕성해 건강도 만점이라는것.
57년 6회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서양화 중진작가 임직순씨(67) 는 지난4월 장호원읍으로 이사했다.
산업도로를 따라 광주 이천을 지나 한참 달리면 징호원읍에 이른다.
읍 못미처 2km쯤에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를 끼고 비포장도로로 사슴목장을 찾아가면 우거진 소나무숲 사이로 덩실한 집이 보인다.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노탑리-. 4천평대지에 40평짜리 양옥이 임씨의 아틀리에다.
15평쯤되는 마루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자두한개 따먹고 냉수한컵 마시고 한시간동안 밭에서 일한다. 상오 9시부터 12시까지, 하오 3시부터 6시까지가 작업시간이다.

<소채류 심어 자급>
낚시터도 있고 원두막도 있고 소나무 숲도 있어 그림소재가 많아졌다는것-.
닭·사슴·공작을 기르고, 상치·쑥갓을 가꾸고, 복숭아 자두등 과수원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일들은 운동삼아 하는것이고 주업은 그림그리는 일이다.
서울에 있을때나 작업량은 마찬가지지만 기분이 좋아 능률이 오른다는 것.
80년 프랑스 르살롱전에서 금상을 받은 서양화 중견작가 손수광씨(45) 는 해인사입구에 카사비앙카 (하얀집)를 지었다.
손씨는 경남합천군가야면사촌리15의3에 대지 2천평을마련, 70평짜리 집을짓고 올1월에 이사했다.
해인사에서 10리밖에 안떨어져 있어 해인사경관이 모두 그림소재라는것.
마음이 편해 하루종일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생활비가 적게들어 욕심 버리고 그림그리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개성있는 비구상작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여류서양화 중견작가 석란희씨(46)는 경기도안성군양성면난실리에 대지3천5백평을 사들여 1백평짜리 집을짓고 올3월에 이사했다.
화실만도 40평. 번잡한 일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어 이제야 자신이 화가임을 실감할 수 있다는 것.
텃밭이 있어 웬만한 채소는 손수 가꾸어 먹기 때문에 완전한 시골사람이 되었다고 까르르 웃는다.
집이 산으로 병풍을 두른듯 둘러싸여 있어 경관도 좋아 작업능률이 오른다고 탈서울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요즘 한창 아틀리에를 짓고 있는 작가들도 많다.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39·홍익대교수) 손혜경(39)씨 부부는 경기도안성군보개면신장리에 5천4백평의 대지를 구입, 지난해 여름부터 공사에 착수, 1주일후면 60여평의 아틀리에가 완공된다. 안성에서도 더욱 후미진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 이들 부부는 앞으로 농사도 지으면서 그림을 그릴 계획.
중진서양화가 박광진씨 (51·서울교대교수) 도 10년전부터 별러온 꿈을 올가을이면 실현하게됐다. 안성군원곡면반제리에 임야를 포함, 2천평의 대지를 구입한 그는 지난5월부터 70평규모의 화실을 짓기 시작, 준공을 눈앞에 두고있다.『박서보씨와 친해「친구따라 강남갔다」는 그는 그래도「너무 몰려있는 곳은 싫어」대림동산으로부터 10km 떨어진 곳에 마련했다고.
박씨는『애들도 다 크고 직장인 서울교대까지 차로 1시간정도면 갈수 있어 시끄럽고 복잡한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동양화가 이인하씨(40)는 경기도남양주군미금읍금곡리산67의1에 있는 연립주택을 계약, 8월중 이사한다.
25평 규모의 이 연립주택은 방3, 거실1, 지하실로 꾸며져 있다고. 집뒤의 산과 눈앞에 펼쳐지는 시골풍경이 자신의 그림분위기와 너무 일치해『소재속으로 들어가 사는 심정으로 마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각가 정관모(48) 김혜원(44) 씨 부부도 제주도북제주군 애월읍광영2리에 4만평의 대지를 사들여 미술관과 작업장을 짓고있다.
서양화단의 중진 이대원씨(65)는 경기도파주군탄현면상현리 고향에 대대로 내려오는「일경 농원」(1만3천평)을 물려받아 주말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배·사과를 심어놓은 과수원, 연꽃이 핀 호수, 논·밭등이 있어 주말마다 내려가 현장스케치도 하고 방학때면 이곳 화실(20평) 에서 작업도 한다.
동양화 중진작가 서산 민경갑씨(53) 도 84년에 경기도남양주군조안면능내리769에 대지1천여평을 사들여 화실(30평)을 짓고 주말마다 내려가 그림을 그린다.
팔당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집은 넓은 정원을 석물과 나무로 잘 가꾸어놓아 별장처럼 경치도 좋다.
성남을 지나 이천읍을 향해가다가 오른편으로 난 작은 샛길로 접어들면 성황당이 있는 마을 어귀가 나타난다. 아직도 초가가 두어채 남아있을 정도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이곳. 5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작은마을에 도드람산을 바라다보며 자리잡은 동산집이 바로 78년, 제1회 중앙미전대상수상작가인 조각가 강대철씨 (41·경기도이천군마장면장암부락)가 사는 곳이다.

<홀아비 생활 5년>
강씨가 이곳으로 이사온 것은 지난82년. 「홀아비」 아닌「홀아비」 생활을 해온지 벌써 5년이다.
작업시 넓은 공간을 요하는 조각의 특성때문에 아내의 반대도 뿌리치고 자신이 태어났던 이천을 찾았던 것.
방2개, 부엌 하나의 15평건평에, 대지3백평의 동산집을 평당 2천원씩에 사들인 그는 27평 남짓의 축사를 아틀리에로 개조했다.
그가 이천으로 내려온 이후 그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83년 신세계에서 가졌던 개인전에 발표된 『K농장의 호박들』은 바로 그가 전원생활을 했기 때문에 얻어진 소재.
강씨는 현재 내년 6월께 개인전을 목표로 작업이 한창인데 아이들 학교만 끝나면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중진서양화가 하린두씨(56)와 중견동양화가 유민자씨(43)부부도 3년전 아예 서울집을 팔아버리고 그린벨트 지역인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아천리) 380의49로 이사했다.
1백평 대지에 30평규모의 지하실 아틀리에를 갖춘것.
다행이 이곳까지 서울버스가 들어와 고2·중2·국교6년인 3남매는 통학에 큰 불편이 없고 학군도 광장동이어서 진학문제도 해결됐다.
꿩·까치도 볼수 있는데다 손수 가꾼 채소로 손님접대까지 할수 있어 득이 많다는 이들 부부는 특히 하씨의 건강이 좋아진게 큰 보람. 지난 봄 유씨의 개인전에서 『초록색과 꽃이 많이 등장하고 화면전체에 평화로움이 넘친다』는 평을 받았던 것도 전원작업의 영향이라고말했다.
현대미술운동의 선봉 박서보씨 (55·홍익대 산업대학원장) 는 경기도안성지역을 화가촌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 80년 경기도안성군공도면마정리에 대지5백평에 55평규모의 아틀리에를 마련한 이후 현대미술을 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줄을 지어 안성에 화실을 마련, 이제 거의 20여명을 헤아릴 정도.
△노후대책△그림을 보관할 공간에 대한 필요성△지방문화확산에 대한 이상등이 겹쳐 전원아틀리에를 구상하게됐다는 그는『이곳에서 헤아릴수 없을만큼 엄청난 캔버스를 처리했다』고 들려준다.
안성지역은 특히 중앙대예술대학이 캠퍼스를 옮기면서 중앙대교수화가들의 전원아틀리에 마련이 많아진곳. 서양화 중진작가인 정영열씨(51·중앙대교수)는 83년 경기도안성군공도면대림동산에 대지5백평, 아틀리에 60평을 마련했다.『서울에서 학교에 출근하려면 거리에 버려야하는 시간이 많고, 또 서울에서는 넓은 화실공간을 마련하려면 경비도 많이 들어 아예 생활근거를 옮기기로 하고 화실을 지은것』이라는 것.

<한실「운보의 집」>
「파이프작가」로 유명한 이승조씨(45·중앙대교수)역시 마찬가지. 이교수는 83년 안성군보개면기좌리에 대지2천평에 60여평의 아틀리에를 마련, 작업을 계속해 오고있다.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동양화가 소산 박대성씨 (41) 는 82년에 경기도남영주군조안면능내리600의1에 대지3백20평을 마련, 집(40평)을 짓고 83년에 이사, 아주 팔당에서 살고있다.
조용하고 공기좋은 이곳에서 사계절을 만끽하면서 현장스케치도 하고 내년에 낼 대작전준비에 여념이 없다.
운보 김기창화백(72) 도 충북청원군북일면형동리에 거대한 한옥 아틀리에를 짓고 82년에 이사, 지금은「운보의집」으로 널리 알려져 외국관광객까지 찾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안성에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는 박서보(대지5백평)·정영열(5백평)·최기원(5백평)·이승조(2천평)·송수남(3백평)·하태진(3백평) 씨등이다.
화실을 지을 땅을 사놓은 작가는 윤미란(공도면 3백40평)·최수화(공도면 3백40평)·최명영(보개면 7백평)·하종현(양성면 7천평)·이숙자(양성면 1천평)·서승원(양성면 1천평) 김종휘 (미양면 4백평)씨등이다.
안성에는 이미 시인 조병화씨(양성면), 경제학자 조동필씨(공도면)가 낙향해 있고 시인 박두진씨가 금광면에 여생을 보낼 집을 마련해놓았다.
벽제에도 공예가 황종례·원대정·최승천, 건축가 김형만·서상우·허범팔, 조각가 김찬식,사진작가 문선호, 서양화가 김영덕씨가 자리잡고있다.
송추에도 도예가 신상호씨가 전시장을 만들어놓았다.

<이규일·홍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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