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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보는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권의 책에는 단순한 재미 외에도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시대정신이 담겨져있다.
부모님들 때부터 지금까지 애독되고 있는 세계명작의 대부분은 재미있는게 사실이지만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로빈슨 크루소』에서 아프리카 흑인은 처음부터 해적으로 규정된다. 「크루소」는 뛰어난 화력으로 「프라이데이」를 제압하여 노예로 삼는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은 처음부터 야만인으로 소개된다. 『헨델과 그레텔』은 숲속에 버려져 있다가 자기를 구한 마녀를 죽이고 마녀의 재산으로 부유해진다.
하나같이 살육과 약탈을 옹호하고 백인이 당연히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이다. 식민주의의 전형적인 세계관이 재미로 포장되어 식민지를 경험한 이땅의 어린이에게 지금까지 읽혀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제로 국교2년생이 왜 자기 머리카락은 노랗지 않은가를 고민하였다는 상담 사례보고가 있을 정도다. 이러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 외국 도서를 번역소개하는 경우에 기획 단계에서 세계는 서구(西歐), 서구는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서구인의 신체적 특성이라는 사고의 문화적 몰주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도서, 그리하여 인간은 누구나 아름답고,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고유의 가치관과 수준 높은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는 도서를 찾게된다.
최근 몇몇 출판사에서 각국의 전래동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로 환영할 만하다. 문화적 몰주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제시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세계 여러민족, 여러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래동화는 세월이 걸러낸 교훈성과 빼어난 문학성으로 인해 세계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그나라 민족정서를 형성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서구와는 역사적 이해를 달리했던 여러 나라의 전래 동화의 경우 독자는 적어도 아프리카 흑인을 살육하는 구라파 외인부대나, 인디언을 학살하는 개척자들의 영화장면에 박수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대본을 선정하고, 흔하지 않은 그 나라 언어를 전공한 사람을 찾아내고, 또 그 나라의 풍속과 생활환경, 인종학적 특성을 정학하게 묘사할 자료를 찾아 아름답고 건강한 원주민의 모습을 삽화로 표현한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왕에 활발했던 국내창작 동화의 출간과 더불어 우리와 비슷한 역사 경험을 한 여러나라의 현대창작 동화의 소개 또한 활발해져 아동 도서의 지평을 새롭게 넓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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