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의 화형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일 하오 3시 서울 고려대본관앞 잔디밭. 「헌법특위 분쇄와 미제의 경제침탈 저지를 위한 애국청년학생 총궐기대회」란 긴 이름의 집회가 서울시내 9개대생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개방압력 분쇄하자』 『개헌특위 분쇄하자.』
개교이래 입학식과 졸업식때 교기만이 게양될수 있었던 고대본관건물에 이날 처음으로 2개의 시위 플래카드가 걸려졌다.
방학중 최대규모였던 이날의 집회.
학생들의 구호는 그중에도 미국을 겨냥, 격렬한 어조로 마구 쏟아졌다.
하오 4시20분. 대회를 마친 학생들은 모두 일어서 본관앞으로 몰려갔다. 『수입개방』과 『헌법특위』라 쓰여진 3층 모조탑위에 꽂힌 성조기.
험악한 반미구호가 또한차례 제창된 뒤 탑에는 신나가 뿌려지고 그위에 꽂힌 성조기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외신의 사진으로나 보던 「성조기화형식」을 마친 대학생들은 때마침 시작된 소나기에 더욱 힘을 얻은 듯(?) 교문으로 달려나갔다.
출동한 경찰과 교문을 사이에 두고 2시간여 공방전.
수백발의 최루탄과 비슷한 숫자의 화염병·돌이 날아 안암골은 또다시 싸움터의 모습이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속 학생들은 하나 둘 흩어져 갔으나 분노와 열기는 최루탄 안개처럼 땀위에 가라앉는 듯했다.
학생들이 흩어진 교정, 나뒹구는 석간신문의 머리기사제목이 눈에 잡혔다. 『미, 원화절상 공식요청-들어주면 10억∼20억달러 흑자감소.』 <유재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