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검찰에 출석해 자신의 20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롯데그룹이 1967년 설립된 이래 그룹 총수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는 처음이다.
검찰은 신 회장을 상대로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 등 국내외 기업 부실 인수, 롯데시네마 등 계열사를 통한 친인척 기업 일감 몰아주기 등 관련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해외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떠넘기거나 특정 계열사의 알짜 자산을 헐값에 다른 계열사로 이전하는 등의 방식으로 1200억원대 배임을 한 혐의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또 롯데건설 등 계열사가 최근 10년간 600억원대 가용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 신 회장이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지를 조사했다.
일본서 귀국 않고 버티는 서미경
1800억 부동산 등 전 재산 압류
한국말을 못해 통역을 통해 조사를 받은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달리 신 회장은 통역 없이 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특수4부 검사 4명이 두 팀(2명씩)으로 나눠 조사했다”며 “신 회장도 롯데 측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잘 먹고 진술도 잘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문제에 대해서도 일부 언급했다.
- 신 회장이 구속되면 롯데그룹 경영권이 일본 지배로 넘어가는 구조가 된다는 주장도 영장 청구 여부 결정 시 고려 사안인가.
“변호인과 롯데 측 주장인데 우리가 검증할 방법이 없다. 그게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라든지 신병 결정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 전날엔 불구속 수사 가능성도 열어둔 것 아니었나.
“일반론을 말한 것이다. 늘 대기업 수사를 할 때마다 총수의 사법처리에 관해서는 여러 고민 요소가 많다는 뜻이지 어떤 쪽에 방점을 두고 말한 건 아니다.”
지난 6월 10일 롯데그룹 관련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개시된 롯데그룹 수사는 신 회장 조사를 끝으로 마무리 국면에 들어갔다. 앞서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 짙은 감색 넥타이를 한 신 회장은 오전 9시20분쯤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검찰 수사에는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회삿돈 횡령·배임, 비자금 조성 등을 지시하고 탈세에 관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다”고 한 뒤 중앙지검 15층 조사실로 직행했다.
한편 신격호(95)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7)씨가 일본에 머물며 소환에 계속 불응함에 따라 검찰은 그의 국내 전 재산을 압류 조치했다. 압류 대상에는 국내 부동산(1800억원대 추정) 등이 포함됐다. 검찰 관계자는 “서씨의 탈세 혐의와 관련한 추징 등이 압류 목적”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증여받으며 3000억원대 증여세를 내지 않은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은 서씨가 끝내 입국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재판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글=현일훈·송승환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