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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⑧ 호텔 조식 부럽지 않은 골목길 아침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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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라이루는 상하이에서 가장 좁은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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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한 맥주바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다. 대기 테이블 구석에 놓인 영자 잡지를 하릴없이 뒤적거리다가 눈이 번쩍 커졌다. ‘상하이에서 가장 좁은 길 펑라이루(蓬萊路)’를 소개하는 토막기사였다. 길 이름이 왠지 낯익다했는데, 알고 보니 며칠 뒤 가기로 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바로 그 거리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갔다. 펑라이루는 승용차가 들어가기 힘들 만큼 좁은 도로다. 도로라기보다는 집앞 골목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집 앞에 의자 하나만 두면 앞집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이고, 앞집 지붕에다 대나무대를 걸쳐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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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허루는 아침부터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실은 펑라이루보다 그 옆에 ‘닝허루 거리(凝和路)’가 진짜 명물이었다. 이 거리에는 정육점부터 생선 가게, 과일 가게, 채소 가게, 중국식 아침을 파는 식당까지 다닥다닥 밀집해 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신나게 장을 보는데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주고 받는 표정이 정겹다. 아마 매일 보는 얼굴인가 보다. 제면소에서는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주인이 굵기와 모양이 다른 면을 쭉쭉 진열해놓았다. 앞 집 찜기에선 갓 쪄낸 만터우(饅頭)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닝허루의 제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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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닝허루 시장은 악명이 자자했다. 지금처럼 따로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좁은 거리 양쪽으로 500개가 넘는 좌판과 리어카가 늘어서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었다. 상하이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혼잡함과 더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날씨 좋은 날에는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상인끼리 싸우는 소리에 주민들이 창문도 못 열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들의 불편 호소로 인해 좌판은 모두 사라지고, 평범한 동네 시장이 됐다.

요우탸오는 중국인들의 흔한 아침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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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중국식 아침을 파는 식당도 일찌감치 문을 연다. 빈속으로 나온터라 출출해서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 보였다. 우선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아침식사인 ‘요우탸오(油條)’와 달달한 두유 ‘더우장(豆漿)’을 사서 먹었다. 꽈배기처럼 생긴 요유탸오를 한입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기름에 튀겼는데도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해서 식감이 프랑스 빵 크로와상과 비슷했다. 예전에도 몇 번 먹어봤지만 제대로 만든 요우탸오는 이때 처음 맛봤다.

상하이의 명물 군만두 성졘바오를 파는 가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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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선 지글지글 셩젠바오(生煎包)를 튀기고 있었다. 셩젠바오는 상하이의 명물 군만두로, 두터운 만두피 안에 돼지고기 또는 새우 소가 들어있다. 납작하고 큰 솥에 기름을 자박하게 붓고 굽는 동시에 찌는데, 덕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푹 익는다. 이 가게의 셩젠바오는 동네  주민에게도 폭발적인 인기인 모양이었다. 큰 솥에 담긴 셩젠바오가 다 팔리면 한 차례 다시 구울 때까지 5분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눈앞에서 완판을 지켜본 뒤에야 내 차례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앞의 앞 아주머니가 솥에 있던 여남은 셩젠바오를 깡그리 쓸어 담았다. 그 모습을 본 내 앞의 아주머니가 불 같이 화를 냈다. 나도 덩달아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저 군침 도는 소리를 들으며 공연히 5분을 더 기다려야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맛본 닝허루의 셩젠바오는 유명 체인점에서 먹은 것보다 10배는 더 맛있었다.

지단총요우빙은 계란토스트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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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운영하는 ‘지단총요우빙’ 가게도 있었다. 간단히 지단빙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중국인이 즐겨먹는 아침 메뉴다. 개어놓은 밀가루를 철판에 두르고 계란과 파를 올려 지진 뒤 둘둘 말아준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계란 토스트 맛인데, 여기에 매콤한 라장을 뿌리면 훨씬 먹기 좋다.

나름 세 가지 코스 메뉴로 든든히 허기를 채우고 나니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나 세련된 브런치가 부럽지 않았다. 닝허루에서 파는 이같은 아침 먹거리는 우리 돈으로 300~800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간판도 없이 동네 장사를 하는 집들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음식을, 늘 같은 사람이 만들어왔기 때문일까. 대충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맛의 균형이 잡혀 있다. 장인의 손맛이 느껴진다.

상하이의 후미진 골목에서 문득 깨달았다. 거리에도 셰프가 있고, 참맛에는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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