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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정상조업 35일중 3일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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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기자간담회. 남충우 부회장은 '2010년 국민소득 2만달러 실현을 위한 자동차산업의 역할'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은데…"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현대차 노사협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35일 동안(일요일 포함) 파업.잔업거부 등 없이 정상조업이 이뤄진 날은 지난달 22~24일 단 사흘뿐이다.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으로 맞붙은 노사 양측은 엄청난 입장 차이만 보인 채 평행선을 긋고 교섭이 계속 결렬되면서 생산 라인이 멈췄다.

이에 따라 현대차만 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생산차질을 빚고, 협력업체는 조업 중단에 따른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다. 여기다 하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외국인 투자가 주춤하고 대외 이미지 추락까지 우려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를 전망이다.

◆쟁점이 무엇인가=현대차 노사분규는 임금 인상 등보다는 주 5일 근무제 등 정치적 난제들이 협상 쟁점이 되면서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 및 정치권의 눈치보기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회사 측은 23일 임단협 일괄타결을 위해 김동진 사장이 나서 ▶기본급 9만5천원 인상(8.4%)▶성과급 2백%▶생산목표 달성 격려금 1백% 등 파격적 임금 인상안을 내놓았으나 협상 타결에는 소용이 없었다.

처음 1백42개였던 쟁점은 이제 19개로 줄어든 상태.

그러나 ▶주 5일(40시간) 근무 실시▶비정규직 차별 철폐▶노조 경영참여(해외투자 등 자본이동 노사 공동결정)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제는 지난해 10월부터 정부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가 뜨거운 감자로 생각해 처리를 미루다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음달 처리키로 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해 생리휴가를 무급화하고 월차휴가(12일)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등은 정부 법률안의 조기 처리를 촉구하는 한편 노동계엔 그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노동계는 정부안을 반대하면서 실질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안이 그대로 처리된다면 총파업투쟁 등 거센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나 노조의 경영권 참여도 중소 협력업체는 물론 다른 업종까지 일파만파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재계 전체가 반발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재계와 노동계로부터 주목을 받는 처지에서 양측이 내놓을 카드나 양보가 없어 교섭 자체가 지루한 소모전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산업대란 불가피=현대차는 지난달 20일 노조 잔업거부 이후 자동차 생산 라인이 부분적으로 멈추면서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5일 현재 9만5천8백여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해 1조2천6백여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수와 수출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면서 국내외 바이어들의 클레임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고 부족으로 지난달 해외 주문량은 9만대였지만 5만대만 선적됐고, 이달에는 7만5천대 중 1만3천대만 보냈다. 내수도 그랜저XG는 1개월을, 싼타페는 15일을 기다려야 하고, 아반떼XD와 EF쏘나타 등의 재고도 바닥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노조 파업은 자동차 업계의 외국인 투자 유치 및 해외시장 확대도 차질을 빚게 했다.

현대차가 추진 중인 미국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합작법인 출범이 미뤄지고 있고, 현대모비스 등 관련 부품업계의 외자 유치도 어려움을 겪는 분위기다.

다임러코리아 강연석 이사는 "올 들어 미국 빅3가 한국 진출을 추진하다 최근 노사분규로 일단 주춤하고 있다"고 말했다.

2천3백여 협력업체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납품 물량이 줄면서 이날까지 7천억원 이상의 생산 차질을 빚어 일부 중소 영세업체들은 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중견 협력업체들도 지난달 말부터 속속 휴업에 들어가는 등 공장 문을 닫았다.

덕성산업 홍승표 사장은 "아예 납품이 중단돼 일거리가 없어졌다"며 "당초 직원들을 휴가보내는 기분으로 공장 문을 닫았던 게 벌써 한달이 다 돼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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