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교조는 종북 좌파’ 원세훈 발언, 명예훼손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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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종북 좌파 세력’이라고 표현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전교조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원 전 원장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 본안 심리없이 상고를 기각(심리 불속행 기각)하기로 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심리 불속행 기각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2009년 2월∼2013년 3월 재임 중 부서장회의에서 한 원 전 원장의 발언을 내부 전산망에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이라고 게시했다. 당시 게시된 글에는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 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 주기 바람”이라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전교조는 원 전 원장이 전교조가 종북 단체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고 국정원 지부장을 통해 전교조 조합원을 중징계하라고 일선 교육청을 압박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3000만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1심은 “원 전 원장이 전교조를 ‘종북 세력’이라 지칭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계속ㆍ반복적으로 지시한 행위로 전교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원 전 원장과 국가가 전교조에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원 전 원장의 발언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유포됐다는 공연성(公然性)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의 발언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하달한 업무 관련 지시사항으로 국정원 내부 전산망에 공지돼 다수의 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국정원 내부에 국한돼 유포됐으므로 이로 인해 곧 전교조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객관적 평가가 폄훼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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